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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Apr 22. 2024

아주 오만한 글, 명품학부모 안내서

7.  돕지 않음으로써 가르치다

 돕지 않아야 배운다

  자식 교육을 망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 끌끌 혀를 차곤 한다. 도대체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 아이에게 괴로움을 느끼곤 한다. 수십 년 교육경력으로도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도 한다. 더욱 힘이 빠지는 것은 자식교육에 관한 자기 주관이 너무도 분명한 학부모 때문이다. 교사의 의견이나 신념을 믿어주지 않고 동의해주지 않는 학부모와의 대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를 공유하고 아이의 행동을 개선시키는데 함께 해보자고 동참을 호소할 엄두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부모 교육 과정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이수하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교육 부에 제안한 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거절되었고, 거절의 사유는 대학의 교육과정은 편성권은 오직 대학에 있기 때문이라 했다. 물론 그렇지만, 교육부에서 대학에 제안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반론했지만 이후로 답은 없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속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닌가? 너무 귀한 아이들 아닌가? 좋은 부모 되기 교육은 정말 필요 없을까?  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에 있어 어찌 인간을 미물인 직박구리와 비교하는가 하겠지만, 그렇다고 육아에 있어 인간이 직박구리보다 더 숭고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새끼가 귀한 것은 모든 생물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수컷 가시고기의 육아 고행이 알려져 있다. 인간만이 더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일 것이다. 부모 교육, 우리들 중 몇이나 받아 보았을까? 아이를 키우며 한두 번 후회해 본 적 없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어미 직박구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의 가장 큰 과제는 자식 교육에 있다. 교육의 초기 단계에서 직박구리는 훌륭한 학부모의 자질을 보인 바 있다. 교육을 정말 단순하게 보자면, 모르던 것을 알게 해 주고, 서툴던 것을 능숙하게 해 주고,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본 적 없는 것을 보여 주어 눈뜨게 해 주고, 해본 적 없는 것을 해보게 하여 경험하게 해 주고, 생각도 못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인간 개발의 계획적인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기본 중의 기본적인 교육의 방법은 무엇일까? 교사가 가르친 다음, 가르친 것의 어떤 부분이 결여된 경험으로 재구성하여(그것이 학습문제든, 좀 더 어려운 과제든) 이를 학생에게 해결해 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해결해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교사의 역량에 관한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직박구리는 훌륭한 홈스쿨링 교사이자 학부모가 아닌가(다만 학생 교육에 굶주림과 비좁은 환경을 극복해야 할 학습과제로 제시할 순 없지만)? 배고픈 새끼들이 더 큰 목소리로 먹이를 간구하던 외침은, 나중에 숲 속에서 경쟁자를 만나 게 될 경우, 단호한 지저귐으로 경쟁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좁은 둥지를 극복하게 하는 일차적인 목표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둥지 가장자리에 오르게 하는 것이었으리라. 이차적으로는 그 위태로운 곳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날개를 푸드덕거리게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를 되풀이할 때마다 날개 죽지의 힘이 길러지게 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부족하게 제공되는 먹이, 날로 불편이 가중되는 둥지는 아기새들에게 더없이 귀한 교육환경이자 교육자료이다. 먹이 조절과 비좁은 환경으로 어미새는 아기새들이 필연적으로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과제를 수행되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새끼 직박구리들은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날갯죽지에 힘이 생기고, 날개를 가진 존재로서 둥지 가장자리에 오르는 일에, 겁을 용기로 대체하여 극복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어미 직박구리는 새끼들의 배움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웠을까? 그러나 끝내 안타까움을 참아내고 조금 떨어진 가지에 나앉아 지켜보고 응원할 뿐,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았다. 사실 그랬다가는 영원히 새끼 직박구리들의 비행과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전 새끼 직박구리들이 둥지에 앉아 계속 편안하게 먹이를 받아먹고, 어미 직박구 리가 좀 더 큰 둥지를 새로 지어 제공했더라면, 직박구리는 더 이상 나는 새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직박구리 어미새의 안타까운 사랑의 절제에 박수를 보낸다.


  이처럼 직박구리 어미새는 부족한 먹이와 비좁은 환경으로 새끼들이 꼼지락거릴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르치는 교육의 고수였다.  과한 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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