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이 기름져야 작물을 잘 길러낼 수 있다는 말. 남녀 간 자식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에서 남자의 비겁한 공격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글쟁이를 지향하면서도 그 말이 내게 하는 말일 줄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시절, 다독(多讀)을 권하는 성현의 말에 반발했던 적이 있었다. 남의 글을 그렇게 많이 읽고 나서 쓴 글이 어찌 내 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 내 돼먹지 못한 논리였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글귀, 누군가의 생각에 물든 듯한 철학, 결국 내 글은 그런 것이 되고 말 텐데, 그것이 진정 내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미 오염되어 있을 나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게 당시의 오만이었다. 그러나 남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이상한 결심과 실천은 1년이 못 되어 적잖은 좌절을 맛보고야 말았다.
불모지. 책을 읽지 않은 가슴은 아무것도 길러낼 수 없는 황량한 모래밭일 뿐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글이 될 씨앗을 보는 눈마저 흐려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곧 자괴감으로 발효되었다. 정신줄을 놓았다면 자괴감은 아마도 자학을 불러들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글쟁이란 농부와 같은 속성을 가진 모양이었다. 한두 해 농사를 손에서 놓았다고 해서 농사를 아주 잊어버리는 농부가 있을까? 농부의 묵은 창고에는 먼지를 뒤집어썼을지언정 다 쓰지 않았던 거름과 농기구가 웅크리고 있지 않겠는가? 농부처럼 내 창고 들여다보기부터 시작한 것이 주효했나 보았다. 오래된 일기장을 들춰보고 오래전에 출간했던 수필집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뜻밖에도 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자기애가 심한 것 아니냐건 말건 나는 내 일기와 내 책에 빠져들었다.
도서실을 찾았다. 스스로 1년 전의 똥고집에 대해 기꺼이 변절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불모지에 거름을 넣고 나니 다시 씨를 심어 볼까 하는 농심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어려웠지만 어리석었던 글쟁이는 여전히 충분히 비옥하지 못한 밭에서나마 기어코 책 한 권을 수확해 내고야 말겠다 결심을 세운다. 안타까운 건 밭에 거름 넣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이제 잘 알면서도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만큼 학교가 바쁜 것은 유감이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 정상화되길 고대한다.
농사
거름 넣고
씨 넣고
땀 넣어 거두는 농사를 따라
돌덩이 넣고
불 넣고
땀 넣어 거두는 철판
글 넣고
꿈 넣고
열정 넣어 거두는 아이
또 다시
거름 가지러
돌덩이 가지러
글 가지러
종아리에 불끈
힘을 넣는 농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