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원고

나의 원고 청탁자들

by 인해 한광일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은 가끔 힐끗힐끗 내 표정을 살피며 자신들이 하고픈 말을, 슬그머니 내밀며, 아닌 척 압력을 가해오곤 한다. 소위 내 역량 부족을 눈치채지 못한 원고 청탁자들이다.


파주에서 지내던 때, 교감 선생님 한 분은 굳이 파주에 대해 내가 모르는 말을 골라 꺼내며, 은근히 자극하곤 하셨다. 서너 번이나 내게 개성, 평양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내가 끝내 그 이정표를 보러 다녀왔는지 확인하고 싶으셨나 보았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글 쓰는 사람한테 노잣돈 삼아 그렇게 찔러 넣어주신 글감쯤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남북한 문제를 아는 체 쓰고 싶진 않았다.


결국 해당 이정표를 자유로 끄트머리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망원경에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1번 국도는 포장되어 있어 산뜻했다. 그러나 그 길은 일반인은커녕 기업인들의 발길도 끊긴 지 오래된 안타까운 길이었다. 결국 개성, 평양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이젠 금지된 손가락이 되고 말았다. 내친김에 임진각까지 나아갔다. 임진각은 더욱 기가 막힌 곳이다. 북녘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해마다 새해 첫날에, 그리고 추석에, 저 철조망 앞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소원지(所願紙). 그것은 북녘을 향해 날개짓 하는 종이로 된 나비 떼였다. 눈앞에 고향 길을 두고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리씩 풀어놓은 나비들은 그러나 거미줄에라도 포착된 것처럼, 철조망에 붙들려 빈 날개짓만 퍼득거릴 뿐이었다. 철조망 밖으로 북녘땅을 향해 가다가 더는 못 가고 풀죽어 돌아오는 기차가 철교를 건너온다. 결국 개성, 평양을 가는 길이 활짝 열릴 때까지 진정 쓰지 않을 거냐면서 파주는 꾸준히 원고를 재촉할 것만 같다.


꼭 나이 한 띠 차이의 선배님은 내게 당신이 처음 발령받아 아직 병아리 소리를 듣던 때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곤 하신다. 그러니까 요즘 아이들 용어로 꼰대 문화(?)의 한 부분이다. 선배님은 그때의 아버지들을 참된 어른으로 높이곤 하셨다. 그 시절, 젊으나 젊은 당신이 가정 방문을 나서는데도, 아이의 나이 든 아버지는 황송하게도 쟁기질하던 소를 논 가운데 세워두고, 논둑으로 나와 맞아주던 시절이랬다. 소에 매어 둔 쟁기는 그대로 논에 박아놓은 채, 흙 묻은 손을 논물에 쓱쓱 대충 서둘러 씻고, 꼭 집까지 데려가서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대접하고야 말았던 아버지들이셨단다.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있던 그 시절엔 선생이 아니더라도 어른이면 누구든 ‘너희 아버지가 김 아무개씨 아니냐’ 라는 면식(面識)의 단 한마디로 불량기의 학생 훈계를 끝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단다. 그런 면면이 고마워 박봉(薄俸)도 눈물도 상쇄할 만한 세월이었단다. 선배님은 내게 소재가 그만하니 내 글 자락에 그 세월을 종종 반영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노골적으로 청탁하시곤 했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이긴 하나 그것은 아무래도 내 것이 아닌 까닭에 절대로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우기곤 했었다, 벌써 먼 이야기임에도 나는 그 선배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네 아버지는 글을 쓰셔야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서 글을 쓰셔야 했는데….’

‘그림 공부를 더 하셨어야 했는데…’

어머니의 안타까운 회한은 내 가슴까지 훅 끼쳐오는 근원적인 청탁이다. 중학교 때였던가, 어머니는 온 집안의 묵은 살림들을 꺼내 정리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묵은 짐에서 아버지의 원고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저녁, 당신의 묻힌 꿈이 아들에게 발견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들녘을 다녀오시는 아버지의 자전거는 참으로 슬펐었다. 그날 푸른 밤, 불타오르던 아버지의 원고는 더욱더 기가 막혔다.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시던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희디흰 손이었다. 아버지는 그마저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그만두시고 말았다. 이젠 제사 때마다 펼치는 병풍에만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는 이제 바람처럼 가시고 말아 영원한 안타까움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인생을 나는 결코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서글픈 인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외면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언제나 아내보다 먼저 눈을 뜨곤 했다. 원고 청탁자가 나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청탁자는 곧 새벽이었다. 사위(四圍)는 고요하고 정신은 새벽처럼 푸르다. 홀로 깨어 있는 시간이 좋다. 결국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내가 깨어나기 전 혼자 있는 이 시간에는 조급증이 없다. 어떤 곳에서 발원한 생각이든, 생각이 줄기차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생각이 멈추면 책을 꺼내 읽기가 좋아 책을 펼친다. 이렇듯 세련된 청탁이 나는 좋았다. 나의 새벽은 나의 오래된 청탁자이다. 매일 내게 눈을 떠보라면서도 결코 조급히 굴지 않는 청탁자였다. 쓰지 않고, 읽지 않는 무위의 안락함을 알고 나자 마침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이 쌓여 갔다. 결국 나는 새벽을 돋우어 글줄이라도 쓴 때가 어느 때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게으른 팔베게에 머리를 굴리며 써야지, 읽어야지 하고만 있다.






이사



14층 영숙이네
이사 가는 날

사다리차 기다랗게
손 내밀어


장롱 냉장고 세탁기
피아노 텔레비젼 컴퓨터
조심조심 받아 내린다

둥글둥글 싼 이불
책보따리 쇼파 곰인형
조심조심 받아 내린다

이삿짐이 트럭에

차곡차곡

실릴 때마다

ㅡ부지런한 이저씨였는데...
ㅡ친절한 아주머니였는데...
ㅡ인사 잘하는 영숙이였는데...

구경하던 이웃 사람들
마음 속에 담아 둔 말도
차곡차곡 실린다

ㅡ안녕

영숙이가

인사만 남겨 놓고
내 마음도 실어 갔는지


나는 내 방에 돌아와서

공부도 안 되고
온종일 허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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