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 흙길을 따라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그가 와 있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첫째 이모의 맏아들이라는 그를 보고
어머니의 눈빛이
유난히 생기롭던 오후
처음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유리알 같았던,
중학생인 내가 형이라고 부르긴 너무 어려웠던,
서울의 대학생이라던,
웃기 잘하던 그 사람
단지 소금물에 살얼음 얼려 가며
단지 통무 몇 개 띄워 해맑게 발효만 시켜 둔
단지 항아리에서 국물째 둥싯 떠올린 무 하나를
밑간도 없이 나박나박 썰어 넣은 그 음식의
짐작도 못할 맛을
나이 많은, 어른 같기만 하던
처음 보는 이종 사촌 그 형은 알고나 있었을까?
그날 저녁
어머니의 찢어질 듯하던 가난은
이종 사촌 형의 입 속에서 환하디 환하게 웃었을
동치미 국물 때문에
들통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밥 먹는 중에도 혼자 뭐라 말하곤
탄산같이 풋풋 웃는 이종 사촌 형을 따라
보기 드물게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웃었던 저녁
나이 많은 이종 사촌이 내 옆에 나란히 누운 밤
이종 사촌이 내 귓가에 쏟아부은 사이다 같은 말들 때문에
좀처럼 잠 못 이루던 밤
어둠 속에서도 이종 사촌의 옆얼굴이
동치미 무처럼 해맑았던 밤
어머니께서 꼬깃하게 접어 넣어 준 돈을
내 손아귀에 아무도 몰래 다시 쥐여 주었던 밤
서울서 교통체증을 참으며 눈길을 퇴근하던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그의 부고가 와 있었다
돌아가신 큰 이모님의 맏아들이라는,
어머니의
안타깝기만 한 큰 조카라는 이종 사촌 형의 부고
속이 뜨거워
있지도 않은 동치미 국물을
그때의 이종 사촌 형처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냉장고 문을 벌컥벌컥 여닫았다
가난하게 살던 어릴 적 집에
맏 이종 사촌 형이 딱 한번 다니러 왔던 이맘 때 쯤
눈발 속에 동치미가 익어갔던 다시 이맘 때 쯤
맏 이종 사촌의 부고가 와 있었다
* 당분간 개인적인 바쁜 일정으로
작품 발표에 약간의 휴식기간을 두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