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하나, 그리고 달라진 호칭
https://youtu.be/DYKGn5927iI?feature=shared
버스 창가 자리에서는
책이 잘 읽힌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라고 설계된 환경에서는
이상하게 집중이 잘 안되는 체질이다.
독서실의 밝은 조명,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정적,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잡생각이 차오른다.
그런 환경보단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에 기대어
집중할 대상에 집중하는 게 좋다.
옆자리 사람의 휴대폰 화면이 힐끗 보이는 자리,
누군가가 자그맣게 코를 골거나,
친구와 최근에 있었던
재미난 이슈거리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말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늘도 버스 창가에서 책을 읽기 위해
분주히 책을 찾는다.
버스 시간이 코앞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 내가 그 노란 책 어디다 뒀지?”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마는 책을 찾아 내게 건넨다.
"여기 있네"
마지막 문장을 읽은 것도 나고
마지막으로 책을 덮은 것도 난데,
나는 왜 항상 그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를까.
엄마는 또 왜 그렇게 잘 찾는 걸까.
읽을 시간이 있냐는 말에
"버스에서 읽으려고.."라며
구깃구깃한 운동화에 발을 우겨놓는다
손잡이를 잡고
엄마와 눈을 마주한다
책이 거기서 읽히긴 하냐는 표정이다.
나는 당연히 읽힌다는 표정을 짓고
버스를 타러 나선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버스가 천천히 출발한다.
반면 창가로 보이는 저 사람들은
발걸음이 너무 빠르다.
겨울바람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나 보다.
모두가 꽁꽁 싸매고 바람을 가르며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르게 간다.
총총총...
창밖을 구경하다 보면
차갑던 몸이 히터 바람에 ..
아이스크림 녹듯 녹는다.
그렇게 따분해질 때쯤,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 찬기와 함께
책을 편다.
그렇게 교육원까지
1시간 30분의 여정이 시작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을 기울이다 보면
이번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음이
귀에서 멀어진다.
이 글자들과
덜컹거리는 버스의 리듬 속으로
생각도 몸도 맡겨본다
그러다
이 포근함이 깨지는 순간은
버스를 환승할 때 찾아온다.
교육원까지 가는 길에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첫 번째 버스와
환승하는 버스의 향기는
편차가 크다.
첫 번째 버스는
나처럼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나
시내로 놀러 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탄다.
샴푸 냄새, 화장품 냄새,
아직 삶이 한창인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두 번째 버스에서는
나도 지팡이를 짚고 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처럼 책가방을 맨 학생은 없다.
어르신들만이 가득하다.
나물 냄새, 반찬 냄새, 시장 냄새..?
짙은 세월의 향이 떠다닌다.
“손잡이 잡으셔요!”
기사님의 외침도 둥둥 떠다닌다.
여기서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실수로 벨을 누르지 않아
지팡이를 높이 들어 기사님을 부르는 어르신도,
가는 길을 물으며 앞자리로 이동하는 어르신도 있다.
다시 집중이 필요했다.
이어폰의 힘을 빌리자 생각했다.
좋아하는 재즈 선율에
다시 글자 속으로 스며든다.
창밖을 보다가,
다시 글자를 보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손끝으로 툭 쳤다.
“선생님, 벨 좀 눌러주세요.”
안경이 잘 어울리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나한테 한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내 어깨에 분명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빨간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고 있었던 난데
낯선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학생”이라는 호칭을 듣곤 했는데
(누군가에겐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요...)
교복을 벗고 탄 버스에서
내가 처음 들은 그 호칭은
나를 더 어른을 향해
떠미는 기분을 들게끔 했다.
이런 순간들을
겪고 있다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스물하나 다운 순간들이다
TV를 보다 보면
한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했다가
“뭐? 아줌마?”라며..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 여성의 기분을
다른 의미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 날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호칭도 나이를 먹겠지.
사실, “선생님”이란 말이
내게 아주 낯선 건 아니지만...
평일 오후에는
요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버스에서 들은 그 “선생님”은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졌을까.
⠀⠀⠀⠀⠀⠀⠀⠀⠀⠀⠀-J롭게 스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