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쿠키도 굽고 케이크도 만들 때 사는 게 훨씬 이쁘고 맛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꽃무늬 앞치마를 두를 때 느끼는 설렘이 짜릿해요. 이번엔 진짜 맛이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거든요.
신혼 초에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주곤 했어요. 칼칼하게 만든 오징어볶음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서, 싱싱한 오징어가 보이면 잔뜩 사와 냉동실에 얼려뒀답니다. 우리 엄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뜨거운 물 부어 데워 둔 보온도시락에 부들부들한 달걀국까지 담아주면 점심시간에 꺼내도 여전히 뜨끈뜨끈한 정성스러운 집밥이었어요. 채 썬 당근이랑 어묵조림을 가득 넣은 김밥도 좋아했어요. 손이 큰 나는 열 줄을 다 말아서는 동료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3단 찬합에 넣어 보냈어요. 좋아할 얼굴들을 떠올리며 다시마 이불 덮어 정성스럽게 한 밥으로 만든 김밥은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와인선물로 되돌아오기도 했답니다. 도시락통을 흔들었을 때 가벼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그 시절의 내 행복이었어요.
아이의 첫 소풍 때는 초보 엄마가 인스턴트만 잔뜩 싸줬어요. 아이가 먹을 거는 생각 못 하고 보이는 것만 신경을 썼거든요. 김 잘라서 표정 만들고, 햄이랑 치즈 오려서 캐릭터 도시락 만드느라 새벽부터 가위 들고 설쳤지 뭐예요. 이제는 급식 파업하는 날이면 소고기 주먹밥 만들어서 고양이 도시락 픽 귀엽게 찔러주고, 안 먹는 채소 몰래 넣은 계란말이도 담아요. 도시락 먹으며 엄마 사랑이 느껴지라고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예쁘게 꾸며낸답니다.
요리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니 주방용품 욕심이 생겼어요. 쓰기 어렵다는 무쇠팬까지 사서 한동안은 손목 건초염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무거운 거 들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주물 냄비에 끓이는 고깃국은 고기가 얼마나 야들야들한지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기념일마다 신발을 사던 지네 인간은 요즘은 냄비랑 그릇 사는 재미에 빠져있답니다.
파김치 하려고 쪽파 몇 단 다듬으면 손톱에 흙이 잔뜩 끼어요. 그 흙 묻은 손을 보고 있으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요. 늘 흙이 잔뜩 묻어있던 손이 그립거든요. 할머니 옆에서 고사리손으로 쪽파를 만지고 놀던 나는 이제야 실력을 발휘해요. 쪽파를 다듬으며 꼭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실실 웃었다가, 파 썰 때는 이때다 싶어서 혼자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고 만답니다.
누런 깐 마늘이 아무리 편하다 할지라도 통마늘 까면 하얀 속살이 나오는데 어떻게 안 까냔 말이에요.
오지랖 넓은 우리 엄마는 고구마도 밀감도 이웃과 나눠 먹으라고 몇 박스씩 보내세요. 하루는 엄마가 시금치밭 하는 지인 도와야 한다면서 시금치도 커다란 박스로 보내신 거예요. 아무리 손질해도 줄지 않는 시금치 내가 졌다고 집어던지고는 옆 동 언니에게 살려달라고 전화를 걸었어요. 시금치 가지러 온 언니는 그 양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시금치만 보면 우리 엄마가 생각나고, 언니는 시금치만 보면 내 생각이 난대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여기가 식당이냐고 적당히 보내라고 아무리 싸워도 택배가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오면 겁부터 난답니다.
환절기가 되면 아이들 감기라도 걸릴까 우족 넣어 온종일 사골을 끓여내요. 먹는 것은 순간이지만 한 그릇을 내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요리일수록 꼭 큰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진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그냥 내 마음이 좋았어요.
처음엔 우족에 털이 너무 많아서 못 만지겠다고 엉엉 울기도 했고, 몇 년 뒤엔 남편 면도기 가져다가 울면서 털을 밀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까짓 털 불에 그을려서 확 태워버리고 훌훌 터는 주부구단이 되었답니다. 종일 주방에 있으면 고단하지만, 입에 넣기도 전에 맛있다고 엄지척 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힘이 나요. 오후가 되어 집마다 피어나는 밥 냄새는 엄마들이 정성을 쏟아낸 냄새랍니다.
요리는 행복을 만드는 과정 같아요. 사랑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 때 떠올리는 얼굴, 좋아하는 식재료를 보면 먼저 생각나는 마음, 내 가족이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콧노래를 부르며 앞치마를 둘러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