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어떤 감정인지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이름 모를 허전함이 내게 찾아와요. 속옷을 안 입었나 싶어서 깜짝 놀라 가슴 언저리를 더듬어보기도 하고, 배가 고픈가 싶어서 이것저것 입에 넣어 허기도 달래봐요. 하지만 허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질 않아요.
이틀 뒤면 우리 구찌가 하늘나라에 간 지 6년이 지나는 날이랍니다. 내 기억 속에선 아픈 모습은 다 지워버린 채 개구쟁이였던 기억만 남겨두고 싶은데, 퉁실퉁실하던 궁둥이가 빼빼 마른 걸 봐버려서인지 초롱초롱하던 맑은 눈이 뿌옇게 변해버린 걸 봐버려서인지 그게 맘대로 잘 안되나 봐요.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구찌 생각에 술잔을 내리 들이붓고는 취한 척 집으로 도망을 쳤어요. 도어락을 누르면 현관문 너머로 우당탕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 열자마자 달려드는 구찌를 감당해 내려면 현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했어요. 반갑다며 방방 날뛰다가 질질 흘리던 오줌도 내겐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구찌가 달려올 때 내가 집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거든요. 온종일 나를 기다렸으면서도, 격하게 반겨주는 구찌가 고마워서 야심한 밤이지만 산책하러 나가자고 목줄을 매었어요. 혼자 나가기 무서울 때에 전화 한 통이면 츄리닝 바람에 자전거 타고 달려오던 내 친구, 두 손은 핸들을 잡은 채로 두 다리 뻗어 구찌를 부르던 나의 오랜 친구. 그녀와 야심한 밤에 공원을 뛰던 수많은 날 중 하루는 달이 참 밝았어요.
힘들게 뛰어놓고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 먹는 로망은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는 육개장 두 그릇에 볶음김치 하나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소파는 비워둔 채 마룻바닥에 담요 깔고 나란히 엎드리면, 들고 마시기 귀찮은 맥주는 빨대 꽂아 쪽쪽 빨아먹었어요. 그 한 모금에도 벌게진 우리는 마주 보며 한참을 깔깔거렸답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우리 구찌는 내 품 대신 그녀 곁에 누워서 잠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말이에요. 곤히 잠든 구찌를 옆에 두고 밤새 틀어둔 영화는 단지 불빛일 뿐이었어요. 할 이야기가 많아서 밤을 지새우던 그때 우리는 청춘이었습니다. 내게도 구찌에게도 말이에요. 외롭지만 외로울 틈이 없던 그때, 하루를 버텨내기 힘들었지만 보상해 주듯 따뜻함이 느껴지던 그 시간이 참 그리워요.
내게 달려와 주던 그녀는 어머니의 병간호로 대학병원을 오가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지만, 늘 다정하던 그녀의 따스함은 분명 그곳에서도 빛이 날 거예요. 내게 한없이 큰 사랑을 주던 우리 구찌는 밤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나 봐요. 구찌를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질만큼 행복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그때 한없이 슬퍼진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반짝거리는 게 느껴져요. 구찌에게서 받은 사랑이 아직 거기 있거든요. 그 반짝임은 여전히 내게 남아 힘을 보태줘요.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더 그립답니다. 이맘때쯤, 비가 오는 가을날이면 더욱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