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과 함께한 육아

by KJ


늘 그렇듯 잠이 부족한 나에게는 여전히 피곤한 아침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한 채 물통 하나 달랑 들어있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신나게 뛰어 들어가고 나면 나는 앞치마를 두른 채 청소를 시작했어요.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아침 먹은 그릇을 설거지한 뒤 매트를 걷어내서 구석구석 청소기를 밀었어요. 그럼 내 딸과 강아지들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창문 밖을 구경하고 있었는데요, 그 뒷모습이 말이에요- 퉁퉁한 궁둥이 옆에 조금 더 퉁퉁한 궁둥이 그리고 그 옆에는 궁둥이에 기저귀를 찬 꼬마가 앉아 있잖아요. 그 뒷모습이 정말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어요. 너무 귀여운 궁둥이들이라서 피곤함도 가시는 아침이 되었답니다.

우리 집은 저층 단지 뷰였는데, 조경이 잘 꾸며져 있어서 새들도 제집처럼 찾아들고 계절마다 다른 색을 뽐내는 꽃나무들도 아주 예뻤어요.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도 보이고 산책 나오는 강아지들도 잘 보이니 아이들이 바깥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이 나온 우리 아들을 발견하면 우리 딸 세아는 오빠가 반가워 애틋해지고 구찌, 바비의 꼬리는 힘차게 돌아가느라 아주 바빴답니다.

밝은 햇살과 함께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서 우드 블라인드가 창틀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일정하게 나면 절에서 듣던 소리처럼 안정감이 들어서 기분이 차분해져서 좋았어요. 내가 청소를 끝낼 동안 얌전히 있어 준 구찌랑 바비랑 우리 딸을 쪼르르 앉혀놓고 아기 치즈를 작게 조각내어 모두에게 한입씩 먹여주었어요. 세아 한입, 구찌 한입, 바비 한입 먹고 나면 다시 내 딸 한입, 구찌 한입, 구찌 딸 한입씩 말이에요. 세아는 아기니까 먼저 주고 구찌는 엄마니까 그다음으로 줬더니 바비가 자기가 마지막이라고 앙칼지게 굴어요. 하지만 늘 바비가 마지막이에요. 그게 내가 정한 순서였거든요. 대신 바비는 마지막에 남은 조각을 한 입씩 더 넣어주기도 하고 큰 조각의 치즈를 주기도 했어요. 그래야 바비가 조금은 덜 속상할 것 같았거든요.

구찌는 바비 엄마라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한테도 엄마처럼 굴었어요.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한없이 받아들이고 참고 이해해 줬는데, 바비는 자기도 아기라고 곧잘 심술쟁이 강아지처럼 굴었어요. 세아에게 으르렁거려서 놀라게 하기도하고, 세아가 먹을 차례의 치즈를 먼저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말이에요. 세아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조그마한 두 손으로 소중하게 붙들고 있으면 꼭 한입씩 뺏어 먹겠다고 달려들어서 넘어진 세아가 우느라 목이 다 쉰 적도 있었거든요. 어린이집에서 단체생활을 몇 달 배워서인지 우리 아들은 자기 몫은 절대 안 뺏겼는데 우리 딸은 주는 건지 뺏기는 건지 늘 제 몫이 나눠지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우리 세아는 참 바비를 좋아했어요. 바비가 짖으면 놀라서 울다가도 내게 한 소리 듣고 풀죽은 바비에게 다시 다가가는 건 늘 세아 였거든요. 바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에요. 그게 세아가 바비와 친해지는 방법이었나 봐요. 우리 세아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강아지 방석 위에 한 자리 차지하고는 오빠가 하원하고 집에 돌아오는 오후 세 시까지 거기서 셋이서 지냈어요. 늘 포개어져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매일 깨끗이 빨아 햇볕에 말린 따뜻한 방석을 놓아주었답니다.

곁에서 세아를 아기처럼 보살펴주는 구찌를 지켜보더니 바비도 어느새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구찌가 엄마처럼, 어른처럼 굴어서 참 다행이었지요. 그리고 바비와 세아는 꼭 붙어 다니게 되었어요. 둘이 서로를 제일 좋아한 것 같았어요. 잘 놀던 세아가 ‘으앙’ 하고 울음이 터지면 바비가 제일 먼저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말이에요.


우리 세아 점심밥 먹여서 낮잠 재워놓으면 아들이 하원하기 전까지는 구찌랑 바비가 오롯이 내 사랑을 받는 시간이었는데요, 가끔 택배 아저씨가 찾아와 초인종이라도 누르면 집 지키겠다고 달려가 열정적으로 짖는 바람에 우리의 시간이 허무하게 끝나버리기도 했어요. 그런 날은 컨디션이 안 좋다고 보채는 세아를 등에 업고 지내야 했는데요, 등에 업고 있다 보면 구찌랑 바비가 달랑거리고 있는 세아 발가락을 간지럽혀주거든요. 그러면 구찌, 바비한테 가겠다고 내려달라고 해요. 휴- 살았다. 우리 강아지들은 내게 정말 고마운 천사들이지 뭐예요.

어린이집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올 줄 알았던 우리 아들은 집에 와서도 늘 힘이 넘쳐서 강아지 삑삑이 장난감을 집어 던지는 걸 좋아했어요. 장난감을 삑 소리가 나게 몇 번 누르고는 허공에 집어 던지면서 가져오라고 소리치면 어딘가에서 잘 쉬고 있던 우리 강아지들이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려고 멋진 야생마처럼 달려왔었거든요. 하지만 절대 갖다주지는 않았어요. 빼앗아 가보라고 자기들이 차지했으니까 말이에요.

늘 힘이 넘치던 우리 아들이 남은 에너지를 다 써야 그날 저녁에 일찍 재워두고, 늦은 퇴근한 남편과 야식이라도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어요. 늘 함께 뛰어놀아 주는 우리 강아지들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삑삑이 장난감을 들고 신이나 폴짝폴짝 뛰는 우리 아들의 그 천진난만한 얼굴이 떠올라요. 우리 집에서는 대장 노릇을 했으면서 어린이집에선 친구한테 참 많이 물려왔었어요. 정작 강아지들은 물지도 않는데 고맘때 꼬마들은 어찌나 서로를 물어대는지 약 발라주며 많이 아팠냐고 물으면 엄청 아팠는데 그래도 씩씩하게 울지는 않았다고 말하던 그 용감한 꼬마의 얼굴이 말이에요.

나는 늘 끌고 다니던 보라색 유모차에 아들도 앉히고 딸도 앉히고 구찌랑 바비 목줄을 양옆에 묶어서 넷을 나란히 이끌고 산책하는 걸 좋아했어요. 컵홀더에 아이스커피 한잔 꽂아놓고 유모차를 끌면서 바람 쐬는 그때가 나의 정신없는 육아에서 내가 잠시 쉴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내 애착 보라색 유모차가 결국엔 오랜 시간과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중심부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았지만, 그 시절 나의 육아를 도와준 요정 할머니였다고 생각해요. 그 유모차만 있으면 나는 넷을 이끌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거든요.

사실 한 명이 유모차 안 타겠다고 악을 쓰면 그날은 산책 포기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유모차 밑에 넣어둔 아기띠로 자지러지는 한 명을 안으면 이인용 유모차에 그나마 덜 우는 애가 자기도 안아달라고 떼쓰고 있고 목줄이 자주 엉키는 강아지 두 마리까지 끌고 갈 때는 내 정신이 아니게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우리 강아지들에게 짖어대는 강아지라도 만나면 그날은 창피를 무릅쓰고 길바닥에서 우는 날이었거든요. 구찌랑 바비가 말이에요, 우리에게만 순했거든요. 그런데요, 시간이 흐르면 예쁜 순간만 기억에 남나 봐요. 내 기억 속에 생글생글 웃으면서 애착 토끼 인형을 소중하게 폭 안고 있는 사랑스러운 딸과 그 옆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귀여운 우리 아들이, 그리고 늘 우리만 보고 걷는 우리 강아지들, 소중한 토끼 인형이 떨어지면 멈춰서 알려주는 우리 구찌 바비, 나와 기꺼이 육아를 함께 해주던 내 천사들과 함께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꽃이 만발한 공원을 거닐던 기억으로 더 많이 떠오르거든요. 그때 참 평화롭고 좋았어요. 젊고 건강한 우리 강아지들이 함께 있었고, 내 품 안에 있는 게 세상의 전부였던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작고 귀여웠어요. 그리고 지금보다 어린 내가 엄마라고 애쓰고 있던 그때 말이에요. 조용할 날이 없어서 정신은 없었지만 외로울 틈도 없던 그때, 진짜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나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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