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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Feb 07. 2022

결혼의 로망

행복 이발사


결혼의 로망


누구나 결혼에 대한 로망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매일 함께 아침밥을 먹는 소박한 로망을 가진 사람부터 부부가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원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까지다양한 로망이 있겠지만, 나의 로망은 남편의 머리를 직접 이발해주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남자친구에 대한 로망이기도 했는데, 남편을 만나기 전 만났던 남자친구들 가운데 나에게 이발을 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미용사 자격증도 없는 일반인에게 머리를 맡기는게 무섭긴 했겠지. 남자는 모름지기 머릿발인데. 나도 이해한다.


남편은 나에게 머리를 맡긴 유일한 남자였다. 당시 남편은 머리를 덥수룩하게 길러서 이마를 다 덮고 다니는, 왁스는 커녕 꾸밈의 ㄲ도 모르는 남자였다. 앞머리를 조금 잘라서 이마를 드러내면 인물이 훨씬 더 훤해 보일텐데, 머리 좀 자르고 왁스를 발라서 머리를 넘기는건 어때?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귄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외모 지적질을 한다고 받아들일까봐 차마 말은 하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야지’ 애써 속마음을 꾹꾹 누르며 지내던 어느 날 속마음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 앞머리 여기 조금만 잘라주고 싶다.
내가 잘라주면 안될까?”


아차 입이 방정이다. 싶었다.


“아, 그래? 그럼 잘라줘.”


놀랍게도 남편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짜? 정말 괜찮겠어?”


오히려 놀란 내가 물었다.


“응, 괜찮아. 어차피 잘 보일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가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


잘 보일 사람이 나밖에 없다니…귀엽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던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리는 자주 가던 룸까페에서 역사적인 첫 이발식을 거행했다. 그래봤자 앞머리를 조금 자르는 정도였지만.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에이포 용지로 받치고 문구용 가위를 이용해 사각사각 앞머리를 자르자 남편의 잘 생긴 이마가 드러났다.


“꺄악. 이거 봐! 앞머리 자르니까 너무 너무 예쁘다! 훨씬 나은거 같아!”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제  머리는 망했네 하며 얼굴을 찌푸렸을텐데 남편은 호들갑떠는 나를 보며 쑥쓰러운듯 미소지었다.


“그래? 너가 예쁘다고 하니 다행이네.
머리 잘라줘서 고마워.”


이 날부터 2년 째 나는 남편의 전담 미용사가 되어 두 달에 한 번씩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처음엔 1시간 정도 걸리던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전문가용 가위와 이발기도 구입해 이젠 제법 괜찮은 커팅을 한다. 사실 그동안 남편 머리에 ‘땜빵’을 만든 적도, 요상한 투블럭을 만든 적도 있었지만 남편은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남편이 미용실에 전혀 가려고 하지 않아 귀찮을 정도지만 나를 믿고 머리를 맡겨준 유일한 남자인 남편에게 고마워 매번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가능하다면, 남편이 60이 되고 70이 되고 호호 할배가 될 때까지 이발을 해주고 싶다. 그래봤자 1년에 6번 정도니까 10년이면 60번, 50년이면 300번 정도일거다. 남편의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이발하면서 난 어떤 생각이 들려나. 그 때까지도 계속 남편이 나한테만 잘보이고 싶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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