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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Feb 02. 2022

층간소음



똑똑똑똑


….


똑똑똑똑


….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두 번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하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용기를 내 벨을 눌렀다. 부디 인터폰이 집안에 쩌렁쩌렁 울리지 않았기를. 집 안쪽에서 인기척이 멈추더니 드르륵 중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덜커덕 현관문이 열렸다. 현관문 사이로 얼굴이 드러난 남자는 내가 누군지 소개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유 죄송해요…”


“아…네 안녕하세요. 저 아랫집 701호에서 왔는데요…”


“아, 네네”


“네네, 다름이 아니라 조금만…^^;”


“아유, 네네 죄송합니다. 많이 시끄러우셨죠? 의찬이, 아빠가 뛰지 말라고 했지?”


남자 뒤로 남자 허리 높이보다도 작은 남자 아이가 호기심어린 얼굴로 어른들의 대화를 듣다 겸연쩍게 웃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한데 조금만 덜 뛰게 해주세요^^;

조금만 조용히~ 미안해~ 죄송합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에 아이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며 연신 허리를 숙였고 윗집 남자 역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덜컥 현관문이 닫히자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내려오자 남편이 걱정스런 얼굴로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보았다. 난 마스크를 벗으며 ‘잘 해결됐어’라고 말했고 긴장이 풀려 남편에게 퍽 하니 쓰러져버렸다. 층간소음으로 칼부림나는 시대에 밤 12시에 윗집에 올라가다니 나도 참 간도 크지.


우리 윗집은 한동안 공실이었다가 일주일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뜀박질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만으로도 대여섯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는 사실을 확신케 했다. 흔히들 층간소음을 발망치라고 표현한다는데 우리 윗집 꼬마 친구는  안을 100m전력질주를 하듯 뛰어다녔다.  집안을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층간소음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꼬마도 나가서 놀고 싶을텐데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싶어 참고 넘어가려 했지만 오늘은 100m전력질주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10 이상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저렇게 뛰면 뛰지말라고 자제시키는 어른의 목소리도 들릴 법도 한데 어른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건물이 방음이 잘돼서 아랫집이 가만 있는거라고 생각하는건가?’


나는 10분 정도 더 고민하다 나에게는 이 건물의 방음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전달해줘야 될 ‘의무’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재빨리 외투를 주워 입고 윗층으로 향했다. 현행범을 잡아야 된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막상 윗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랫층에서 층간소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 알려주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화를 낼 일도 아니고. 아래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


용기에 용기를 내 노크를 했고 다행히 뉴스에서 보던 것과 같은 험악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윗집 분이 바로 사과를 해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무모한 용기로 얻은  가지 수확이젠 윗집 아이가  윗집 분의 죄송한 얼굴과 아이의 겸연쩍은 얼굴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때 윗집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얼굴 모를 사람들을 혐오하며 부글부글 속을 끓였겠지. 지금은 아이 아빠의 죄송함과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화가 조금은 누그러든다. 윗집 꼬마는 여전히 열심히    방을 뛰어다니지만 나는  이상 윗집에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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