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친구 그리고 술
엊그제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다. 며칠이 멀다 하고 만나서 술을 마시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석 달만의 만남인데도 그리 낯설지가 않다.
본시 “친구”는 가깝다는 의미의 “친(親)”과 오래됨을 뜻하는 “구(舊)”가 합해진 단어이다. 순수 우리말로는 늘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란 의미의 “동무”와 터놓고 함께 한다는 뜻의 “벗”이 있다. 이러한 친구를 뜻을 같이 하는 영혼의 단짝이라고도 하니 끼니를 같이 한다는 “식구(食口)”와 동급으로 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오래 사귄 친구보다 좋은 거울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고 스코틀랜드의 속담에는 “새로운 친구와 오랜 적은 믿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의미로 읽히는데 다른 느낌이다.
불현듯 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어떤 거울로 비추어질까?라는 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는 친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는 철없던 시절이 그리울 나이가 됐는데도 혹시 어린 시절을 같이 했던 친구의 뇌리에 내가 못난 이로 각인되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술은 기원전 원시 수렵시대에 자연발생으로 만들어진 과실주가 최초로 추정되고 있는데 수천 년 전 전쟁터에서는 배고픔을 이겨내는 식량으로 신을 경외하던 시절부터는 제를 표하는 음식으로 근세에 들어서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기호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술은 뚜렷한 장점을 찾기가 힘들긴 하다. 오히려 영국의 전(前) 총리는 “전쟁과 흉년과 전염병을 합한 폐해보다 술의 폐해가 더 크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데 친구와 술이 불가분의 관계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오래된 거울 같은 친구와 오래 빚은 향내 나는 술이 차별 없이 맘속에 파묻히는 것은 냉정함을 잃은 중년의 순수함일 것이다.
오늘 마누라님과의 타협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노후 연금과 부부 해외여행을 되뇌고 당구 장인을 자신하며 소맥잔을 기울이는 나의 친구들이 “왜” 친구(親舊)인지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기분 좋은 취기에 다시 한번 나를 맡겨본다.
친구 그리고 술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