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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pr 10. 2024

복직을 새해 결심하듯이 꾸려가는 중

 나는 원체 늦게까지 못 깨어있는 편이라 휴직 중에도 밤 11시면 잠이 들어서 남편이 정말 의아해했었다. "왜 회사다녀온 나보다 더 피곤해하지? 혹시 부업해요?"

그리고 복직한 지금은 9시부터 피로와 졸음이 몰려온다. 아이랑 쇼파에서 책을 읽다가 얼핏얼핏 잠들기도 한다. 하루가 타이트하고 앞뒤가 '얼른 떨쳐야 하는 잠'과 '속절없이 쏟아지는 잠'으로 꽉 막혀있다.


 업무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내가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자료를 찾고, 절차를 거듭 확인하고, 다른 부서에 물어봐가며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미팅도 참여하고 보고도 하다 보면 여유가 없고 시간이 금방 간다. 오후가 꺾일 때쯤엔 머리가 아프고 눈이 뻐근해진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면 쫓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집으로 달려간다. 또래 엄마들과 이야기해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 아빠가 퇴근이 늦을 때면 집에서 혼자 잘 기다리는 애들도 있던데 우리 아들은 그런 담대한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가급적 아이를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 능력에 비해 자아가 비대해서 의도치 않게 사고 저지르기 좋은 시절이다.

 

 퇴근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를 마중나가서 놀이터에서 놀도록 하거나, 같이 산책을 하거나, 혹은 같이 장을 보기도 하고, 집에 와서는 또 이런저런 놀이를 같이 한다.각종 보드게임, 카드놀이, 알까기, 공기, 말놀이 등등을 하다가 저녁도 차려먹고 숙제도 시키고 옆에서 나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하다보면 순식간에 9시가 되는데 그럼 정말 너무 너무 졸립다. 이렇게 건실하고 빡빡한 일상이라니... 얼마전까지의 여유로운 일상이 벌써 아련한 추억이다. 풍요로운 과거는 빠듯한 현재를 보정해주지 못한다.


 복직하고 2주만에 헬스와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비용을 상당 부분 보전해주기도 하고, 체력과 영어라는 인생의 숙제가 다시금 현실을 때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다이어트처럼, 많은 (한국) 사람이 새해마다 결심하는 것이 운동과 영어공부가 아니겠는가. 복직이 나에겐 새해처럼 출발선의 역할을 했다. 남편은 왜 복직하자마자 그렇게 무리를 하냐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어떤 전환점에 서면 괜히 청사진을 세우고 배움을 시도해보고 그런 법이다. 그리하여 여러모로 체력이 바닥이고 밤이면 정신을 못차리고 쓰러지는데  간혹 자다 깨면 '내일 회사가면 A부터 처리해야지... 안돼! 일 생각하면 안돼!'라며 급히 잠을 다시 청한다.

 

 복직을 앞두고, 그리고 복직한 직후에는 공황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었다. '나 한 사람 등신같이 일해도 이 팀이 굴러가는데 문제가 없을까?'라고 친한 동기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환경의 변화 자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라 그 좋다는 대학교 1학년때도 상당한 혼란과 괴로움을 느꼈더랬다. 다행히 다시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두려움은 이제 사그러들었다. 그 자리를 실질적인 업무 스트레스와 일-가정 양립의 피로감이 대체하는 중이다.


 여유있는 삶을 추구하는 나는 예전부터 워커홀릭을 보면 신기한 한편으로 '어차피 해야하는 일인데 저렇게 달려들 수 있는 열정이 있다니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일하는 짬이 쌓인 지금은 워커홀릭이라는 게 꼭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아도 책임감이나 완벽주의 등 개인 성향에 따른 결과일 수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번아웃이 올 수 있다는 걸 안다. 뜯어보면 상당히 허술한 이 세상이 그래도 큰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는 건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임하는 사람들-좋게 말하면 선의, 나쁘게 말하면 밥벌이의 무서움- 덕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트렌드에는 다소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건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일반적인 성실함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회사다니는 구우일모로 살아가며 그에 맞는 일상을 다시 정립 중이다. 그리고 역시나 일반적인 삶에 제일 중요한 건 체력이라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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