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산책하면(2)

by 언덕 위의 건축가

뱃살 빼는 산책

파리에서는 9 구역에서 살았다. 그리고 내가 출근해야 하는 사무실은 센강 건너 6 구역에 있었다.

센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그래서 파리는 서울과 달리 강동과 강서로 나뉜다.

강동이 서울로 치면 강북, 즉 올드 타운이고 강서는 서울의 강남에 비유할 수도 있다.

센강 동쪽에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관광코스가 있다. 몽마르트르, 샹젤리제, 루브르 등등.

강서에는 에펠탑도 있지만 오피스와 대학들이 많이 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직선거리로는 4km 정도였지만 내키는 대로 걷다 보면 5km 이상은 걸리는 거리였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에서 용산역쯤 되는 거리였다. 파리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다.


나는 이 길을 매일 걸어 다녔다.

그 사무실에서 내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사무실에서 내가 검토해줘야 하는 일은 하루에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매일 출근은 해야 했다. 파리라는 도시를 구석구석 소요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아침에 간 길과 오후에 돌아오는 길을 다르게 걸었다.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걷지 않았다.

한 달쯤 매일 도시의 골목골목까지 산책하다 보면 파리가 의외로 단조로운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어느 도시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유독 파리의 골목길 풍경은 어디나 한결같다.

그래서 당시의 산책은 도시를 구경하기보다는 사람과 가게를 구경하는 산책이 되었다.

꽤 옛날이었으니까 모든 카페와 구두가게, 작은 상점들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한 도시의 디자인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쇼윈도의 디스플레이와 간판 디자인이다.

베니스나 밀라노만큼은 안되지만 파리의 디자인 수준도 꽤 높았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는 매일의 산책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가끔은 그 상점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 곳은 서점이다.

당시에 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해 준 것은, 주택가에 작은 서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필운동, 가회동, 누상동에 있는 작은 서점들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게 보인다.)

필운동, 가회동의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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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파리의 서점에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다.

겨우 FNAC 같은 대형 서점에나 가야 영어로 된 책을 그나마도 조금 찾을 수 있었다.

(FNAC에서 놀랐던 것이 있었는데, 불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 코너가 영문책 코너보다 더 크다는 점 그리고 그 코너에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불어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는데도 작은 서점에 들어가 보는 것은 디자인 관련 책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작은 서점에서 김홍도의 춘화집을 발견했다. 김홍도가 춘화를 그렇게 많이 그렸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든 프랑스 사람들도 놀라웠다. 당연히 그 책을 사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된다.

여러모로 프랑스의 출판문화가 갖고 있는 거대한 저력에 많이 놀랐었다.


어쨌든 한 달을 그렇게 걸어 다니고 나니 허리띠가 두 칸이나 줄어들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뱃살이 넉넉하지 않았었는데도)

이 경험은 훗날 나의 몸매 관리 방식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홍대앞

도시를 산책하는 데 굳이 역사공부까지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 길의 역사를 알면 길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재미가 있어진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적겠지만, 모든 도시에는 지문(fingerprint)이 있다. 서울처럼 오래된 도시에는 그 지문에 겹겹이 쌓인 정보들이 들어있는데, 그것을 알고 그 길 위를 걷는다면 그때의 산책은 그전과는 분명 다르게 된다.

서울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산책할 수 있는 간단한 팁을 주자면, 어느 동네에 들어설 때 잠깐 멈춰 서서 그 동네 이름의 기원을 검색하는 것이다. 1분이면 충분하다.


서울의 여러 동네 중에서 내 눈으로 그 급속한 변천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한 동네가 한 군데 있는데, 바로 홍대 앞이라고 불리는 서교동이다.

지금도 혼자서 혹은 학생들과 홍대앞을 가끔 가는 편이데, 그 길의 변하는 과정을 눈으로 봤던 터라 그 동네를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홍대앞 서교동은 일반적인 대학가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조용한 주택가였다.

홍대 정문 앞에 겨우 소박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이 다른 대학가와 다른 점은 화구를 파는 화방들이 많았다는 정도이다.

또 건축사사무소도 더러 있었는데 홍대의 건축과가 좋은 건축가들을 많이 배출한 것도 이유가 됐겠지만, 그 거리의 임대료가 싼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홍대생들도 학교 앞보다는 신촌으로 가서 친구들을 만날 정도로 홍대앞은 유난히 한산한 대학가였다.


가끔 화구를 사러 가는 목적이 없을 때에도 나는 서교동의 주택가를 산책하곤 했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저택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서교동은 성북동 못지않은 부유한 주택가였다.

집집마다 넓은 마당과 주차장이 있었다.

그 주차장들을 홍대 미대생들이 빌려서 아틀리에로 사용했다. 그래서 서교동의 골목들을 걸으면 소호(soho)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미술대학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류의 허기를 채울 방법이 없었다.

담장 위에는 감나무와 사과나무에 과일이 익어가고, 담장 아래 주차장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들이 삐져나와 있는 서교동의 가을은 무척이나 낭만적이었다.*


몇 년이 또 지나 스물여덟이 되던 해, 즐겁게 다니던 첫 직장에 사표를 쓰고 갑자기 인테리어 회사를 차리게 됐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한 외국인이 그보다도 더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큰 프로젝트를 의뢰한 것이다.

사무실을 구해야 했는데 돈이 있을 리가 있나. 그래서 홍대 앞으로 갔다.

학교 앞 큰길은 그래도 비쌌고 그 뒤에 기찻길*이 있었다. 나중에는 피카소거리라고 불리던 지금의 '어울마당로'이다.

사용하지 않는 철로가 어색하게 누워있는, 마치 서부영화의 퇴락한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인적 드문 그 철길가의 한 건물에, 그나마도 다른 이가 쓰고 있는 사무실의 반을 빌려서 회사를 차렸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마포구청에서 그 철로를 거둬내고 그 긴 선형으로 독특하게 남은 땅에 공용주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운영권을 민간에게 대여했다. 차는 커녕 사람도 안 다니던 시절이다.

사무실 옆에 쌀가게를 하던 아저씨가 1년에 천만 원을 내기로 하고 그 전체 주차장의 운영권을 받았다.

그리고 망했다.


그 와중에도 어떤 현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일 때문에 내 사무실을 몇 번 방문했던 한 선배가 그런 사람이었다. 꽤 크게 금속가공 공장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이 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게 될 거야'라고 말하고는 주차장 앞 비어있는 가게를 임대해서 뜬금없이 카페를 하나 만들었다. 원래부터 있었던 동네 카페 한 곳을 빼면, 내가 아는 한 그 거리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카페이다.


*담장 위로 사과를 본 기억이 뚜렷한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과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의문도 든다.

*연남동에 있던 철길은 옛 경의선이고, 이 철길은 서부역에서 당인리 발전소로 석탄을 나르던 화물찻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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