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산책하면(1)

by 언덕 위의 건축가

글로 알게 된 어느 작가가 도시 산책에 대한 책을 냈다는 소식이다.

주문을 했는데 아직 받아보지는 못한 채 펜을 든다.


도시에 대해서는 나름 꽤 지식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전문 지식을 펼치는 짓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도시산책의 경험은 많다. 직업과 별개로 오래된 나의 취미이다.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사람 사는 주택가로 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어느 관광지든 그 뒤에는 사람 사는 주택가가 있다.


등교시간이 늦은 여중생이 뛰어가는 도쿄 다이칸야마의 골목, 출근하는 가장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 인기척 하나 없는 홍콩 할리우드 로드, 그 놀랄 정도로 남루한 빌딩들 틈을 파고드는 아침 햇살.

출항을 준비하는 어부들로 바쁜 벳부의 아침 항구. 밤 보다 아침이 더 을씨년스럽게 보여 공포스러운 런던 워털루역 뒷골목.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밝은 얼굴로 기괴한 체조를 하는 나트랑의 해변. 낮이라면 열성적으로 호객행위를 했을 그 사람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길거리에서 아침을 먹는 다낭의 한 마켓(Han Market).


안개 낀 블타바 강변을 뛰고 있는 날씬한 프라하 아가씨. 추위에 덜덜 떨며 아침 빵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베니스의 중년 아저씨.(베니스의 바다가 처음으로 얼었다는 구라를 그 아저씨에게 들은 겨울이었다)

숙취에 절어 화장이 엉망인 채로 늦잠을 자는 듯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그리고 그 운하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 등 굽은 할머니.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수십 명의 슈퍼모델들이 쏟아져 나오는 여름 아침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여행 중에 내가 찍는 사진은 대부분 이 시간에 찍는 것들이다. 일행과 떨어져서 잠시라도 혼자의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 화장하기 전 도시와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재미가 어쩌면 내 여행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시내에 나가면 무수히 많은 인파와 마주친다.

주로 종로구와 중구가 여기서 말하는 시내가 된다. (성수동과 합정동 같은 구역은 뒤에 말하듯이 사람과 가게를 구경하는 곳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내국인들도 종로와 명동, 광화문과 북촌, 서촌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틈을 천천히 걸어서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은 나처럼 목적 없이 산책하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프랑스어에는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가 따로 있다. 플라뇌르(flaneur). 주로 파리의 도시산책자를 칭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신책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구경하거나 가게를 구경한다.

도시 구경, 말하자면 가게도 없고 사람도 드문 곳을 산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시, 특히 서울 강북의 도시가 얼마나 볼만한 그림이고 얼마나 읽을만한 글인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그림이 그렇고 글이 그렇듯이 각자 알아서 즐기면 된다.

다만 그 산책의 즐거움은 권해주고 싶다.


도시를 구경하고 느끼는 데에 무슨 지식이 필요하고 방식이 필요하겠나.

다만 어떤 형태의 도시산책이든 그것은 좋은 것이다고 권하고 싶은 마음에, 도시산책에 대한 옛 경험 정도를 서로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가볍게 글을 쓴다.


천천히 걷기

학교에서 내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과 만나서 얘기 나누는 것이 내 직업 중에 하나다.

그 나이답게 발랄하기도 하고 그 나이답게 고민도 많다.

그 고민을 모두 들어주고 해결해 줄 능력은 나에게 없다. 그냥 어설픈 조언을 두 가지 해준다.


걸음걸이를 늦춰봐라.

연애를 해라.


답답한 상황이 극복되었으면 하는 조바심들이 있다. 어느 순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자기라는 벽에 절망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쉽지가 않다.

'큰 것 바꾸려고 애쓰지 마라. 노력해서 극복하려고도 하지 마라. 그냥 걸음을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어봐'라고 말해준다.

내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사물을 관조하게 되고 시간과 환경을 여유 있게 쳐다보게 된다.

얼핏 전체를 볼 때에는 발견 못했던 허술한 구석도 보이고 맥점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보게 된다.

운이 좋으면 또 다른 문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난한 산책

학생시절, 특별한 일이 없는 금요일에는 방과 후에 시내를 걸어다는 것이 내 취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산책이 아니라 인사동의 화랑들을 순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의 인사동에는 골동품점과 전통찻집 드물게 기념품점 그리고 무수히 많은 화랑들이 모여 있었다.

마땅한 홍보수단이 없던 시절이어서 전시회 포스터가 인사동 건물들의 벽에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당시의 인사동 풍경을 떠올리면 전시회 포스터로 가득 찬 거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장식적 교양이 만연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전시회들은 늘 한산했다.

전시회뿐만 아니라 인사동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갈 일이 없는 동네였다.

그 화랑들을 한 바퀴 순례하면서 벽에 붙어있는 그 포스터를 떼어와 수집하는 것이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포스터를 수집하면서 느낀 것은, 화가들이 작품보다 더 공을 들여 만드는 것이 포스터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길에 붙여놓은 포스터도 포스터를 공짜로 주는 작가도 만날 수가 없다.


당시에 혹은 나중에 그 포스터를 보게 되는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넌 우리보다 더 열심히 술 마시고 당구 치던 놈이 이런 데는 언제 다녔냐?"

그건 그들의 오해다.

학부 때는 남들보다 용돈이 부족해서 친구들에게 많이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일부러 술자리를 피한 적이 많았다. 5천 원이면 빈대떡 두 장과 막걸리 세 되로 네 명이서 충분히 마시던 시절이다.

어쨌든 존재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었는지, 친구들은 모든 술자리에 내가 있었다고 기억을 한다.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시간에 한 것이 두 가지였는데, 도서관 서고 구석에 앉아서 건축 이론서를 읽는 일과 전시회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자랑하는 것 같지만 그 반대이다.

당시에는 그런 학구적인(?) 행동이 조금 부끄러운 짓이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구나 타인의 시야 밖 삶을 별도로 산다.


특별히 시간을 뺏는 전시가 없으면 안국동, 원서동, 가회동 등 요즘 북촌이라 일컬어지는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당시에는 북촌이라는 명칭은 없었고 그냥 조용한 주택가일 뿐이었다.

급기야는 산책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서 경복궁 건너편 동네, 요즘은 서촌이라 불리는 필운동, 누하동, 누상동 등(이 동네는 한 동의 크기가 손수건 한 장 정도의 넓이여서 그 이름을 다 불러줄 수가 없다.)을 너머 서대문과 남촌이라고 할 수 있는 남산 주변의 동네까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책을 읽거나 전시회의 그림을 보는 것 못지않게 산책을 즐겼었다.

덕분에 한 동안은 학생들이 작품의 대상지로 서울의 어느 땅을 정해서 가져오면, 그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나 쌀집을 내가 줄줄이 말해서 학생들을 놀래키는 재미도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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