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모스크바의 별명은 표적 도시(Target City)이다.
우크라이나 드론의 표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도시의 지도를 보면 마치 사격 표적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도시 내부에 두 개의 순환도로 그리고 외곽에 세 번째 순환도로가 있어서 지도를 보면 표적판처럼 보인다.
택시를 타고 외곽순환도로를 가다 보면 양쪽에 자작나무 숲 밖에 안 보이는 곳을 한참 달려야 한다.
인구 천만이 사는 도시의 외곽을 돌아가는데 그런 원시림 사이를 지나간다는 것에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모스크바 주변에는 산은 물론이고 높은 언덕도 전혀 없기 때문에 숲의 깊이가 짐작되지도 않았다.
도중에 일행들이 소변을 보러 택시를 잠깐 세웠다. 자작나무 숲에 잠시 들어가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택시 기사가 우리의 등에 데고 이렇게 말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제가 보이는 곳까지만 가서 일 보시고 나와요."
차로 돌아오니 그가 말했다.
볼 일 보러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방향을 잃고 못 나온 사람이 더러 있었다고.
# 모스크바에서 6년 산 사람과 일주일 산 사람.
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보게 되는 모스크바의 풍경은 내가 가본 유럽의 풍경과 많이 달랐다.
궁금한 것도 있고 택시 안의 침묵이 어색하기도 해서 가이드하던 한국 유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문학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와 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 대해서 그가 질문을 하고 내가 설명을 하는 것이다.
크렘린 궁의 돔 지붕이 왜 아라비안나이트 동화책의 궁전과 닮았는지.
러시아정교회라는 게 무엇인지.
모스크바의 별명이 왜 타깃(Target) 인지. 그런 도시계획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드물게 보이지만 타틀린이나 말레비치가 설계했을 법한 구조물을 지나갈 때는
요즘 서구에서 유행하는 해체주의 건축이 어떻게 혁명시기의 러시아 구성주의와 연결이 되는지.
왜 지금은 그런 건물보다 스탈린스타일의 건물만 많이 보이게 됐는지.
등등의 얘기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마지막 떠나는 날.
유홍준의 답사기를 읽었을 리 없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과 일주일을 함께하고 나니 지난 6년간 살았던 모스크바가 전혀 다른 도시가 됐어요."
물론 예의 갖추느라 한 말이겠지만, " 소장님과 마신 보드카 너무 좋았어요." 보다는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