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1월 2일 (D+19, POD5)

by 김부경

병실에서 온라인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해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다.

J 양이 병실에서 찍은 새해 사진을 보내주었다. 내 병실은 마운틴뷰라서 바다와 해가 보이지 않는다. J양 병실은 오션뷰이다.

KakaoTalk_20250126_202314565.jpg

내가 학생 때는 수평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눈에 보였다. 본과 1학년때 큰 건물이 정 중앙에 들어서 수평선을 잘라먹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호텔들이 들어서 건물들 사이사이로 조그만 수평선만 보인다. 그런데도 그 수평선만 봐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좋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렇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설렌다.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가 숨어있다. 같은 것 같은데 한순간도 같지 않은 무한한 아름다움이다. 원래 모두의 것이었던 그 수평선은 이제 돈을 주고 보아야 한다. 바닷가 앞에 아파트를 사거나, 하룻밤 호텔료를 지불하거나 레스토랑에 돈을 내고 볼 수 있다. 세상은 그렇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서지브라를 풀고 처음 상처를 보게 되었는데 마음이 슬퍼졌다. 내가 괴물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야, 수술 잘됐다더니, 짝 맞춰준다더니 이게 뭐람?’ 아무리 수술이 잘 되었다 해도 어떻게 원래 가슴이랑 같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그 당시에는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았고, 림프부종으로 등과 겨드랑이가 많이 부어있었고, 체중도 4.3kg이나 불 있을 때라 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인간이 절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걸 전제로 한다면 지금 내 몸에는 인간의 실력으로서는 최상의 결과물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잘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 작품도 건물 사이로 보이는 조그마한 수평선이 주는 아름다움만 못하기 때문이다.


부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올해 사역배치에 내가 ‘재능기부’ 팀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아, 의료봉사 말인가요?”

어디론가 의료봉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의료봉사를 많이 했다. 학생 때는 C.C.C. 아가페에서 매주 금사동에 있는 교회에서 외국인노동자 의료봉사가 있었다. 매주까지는 못 갔지만 꽤 많이 갔다. 차가 있는 친구는 늘 약이랑 이것저것 짐을 싣고 왔고, 우리는 정말 많은 수고를 했다. 방학이면 시골과 작은 섬에서 아가페 수련회를 하며 봉사를 했다. 졸업을 하고서도 우리 첫째가 어릴 때 나의 개인 휴가를 아가페 수련회에 맞추어 그렇게 봉사하며 휴가를 기꺼이 드렸다. 의료 봉사로 단기 선교도 많이 갔다. 선교지에 가면 온 동네와 옆동네까지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교회로 와서 기다린다. 그렇게 새까맣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하루에 이삼백 명씩 보고 돌아온다. 한 번에 족히 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챙길 것도 어마어마한다. 약을 손수 챙기고, 박스로 싸고, 팀원들에게 소분해서 나눠주는 일을 다 직접 했다. 보통은 진료 일정 때문에 다른 팀원들과 의료진 일정이 조금 다를 때가 많아서 비행기 티켓도 직접 했다. 필리핀으로, 캄보디아로, 남아공으로 그 정말 많은 일을 했지만 언제나 즐거웠다. 엉덩이가 무르도록 말을 타도, 며칠 동안 샤워할 곳이 없어도 단기선교에서의 고생은 늘 즐겁고 감사했다. 기꺼이 했다. 그뿐인가, 병원에서 가는 무료 봉사에도 요청이 있으면 늘 기쁨으로 참가했다.


한 번도 이런 기분이 든 적이 없었는데….

정말 하기 싫었다. 의료봉사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렸다. 다시는 환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시 환자를 볼 수 있을까?


내일이면 그동안 간병을 해주던 언니가 떠난다.

내가 다시 감사하고 기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빛을 들고 세상으로


우리 영혼에 주가 주신 꺼지지 않는 빛이 있네
오직 주님께 우릴 드릴 때 그 빛을 밝혀 주시리라

이제 일어나 소망이 없는 어둔 세상에 나아가라
네 빛 비춰라 모두 알도록
빛을 들고 세상으로

절망에 빠진 형제의 맘에 꺼져만 가는 빛이 있네
주님을 떠나 방황하는 자매도 그 빛의 생명 잃어가네

이제 일어나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자 일으키라
내 빛 비춰라 모두 알도록
빛을 들고 세상으로

지나가 부르는 '빛을 들고 세상으로' 찬양 링크 입니다.

https://youtu.be/c7qhbAmFJ80?si=mJRup9k08GnoVN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