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병리결과

1월 5일 (D+22, POD8)

by 김부경

수술 후 일주일째 최종 병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중간보고와 너무 다르게 병변의 크기가 생각보다 너무 컸다. 크기가 가장 큰 상피내암은 4cm 정도일 거라 했는데 최종 6.9cm이었고, 애초에 1cm 미만일 거라 했던 침윤성 암은 1.8cm으로 확인되었다.


담당 교수님도 크기가 너무 커서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2cm부터는 병기가 2기라서 무조건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1.8cm으로 2기에 근접하니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위험도에 따라서 항암치료를 할지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동안의 은혜가 다 사라지면서, 갑자기 다른 세상이 시작된 것 같았다.

정말 죽을뻔했다는 생각과 패배자라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수술 전에 성형외과 교수님이 가슴이 작으니 이번 기회에 반대편도 키워서 짝을 맞춰보자고 몇 번 권유하셨는데, 가슴도 작다면서 그 속에 뭐 저렇게 큰 암덩어리가 있었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럼 오른쪽 가슴 전체가 암덩어리인데, 임파선 전이도 없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부끄러웠다. 식단 관리도 못하고, 운동을 못하고, 항상 무리하고 과로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외래 진료를 마치면 녹초가 되어 방에 돌아와 잠시 쉬려다가 밥때를 놓쳐서 오후 늦게 라면이나 김밥으로 때우기가 일쑤였다. 자기 관리도 잘 못하는 주제에 잘났다고 여러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떠들어댄 것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해온 모든 말과 행동들이 헛소리처럼 느껴졌다. 다 거꾸로 돌아가서 취소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암환자 식단을 찾아보았다. 수술 후 관리, 운동 이런 것들을 찾아보았다. 사실 처음 병변을 알게 된 그날부터 하루 종일 찬양만 듣고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나는 거꾸로 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것들을 먼저 알아본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암을 알려주셨으니, 내 생명이 주님 손에 있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이제 새로 주신 생명을 더 건강하게 가꾸어야 하는 것이 내 몫이다.


저녁에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죽을까 봐 아이들 생각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살다가 암 걸리면 너무 자존심 상해’. 그게 제일 힘들어”

“그래도 언니 열심히 살아온 것 사람들이 인정해 주잖아.”

“그래, 그게 감사하지만 그러면 뭐 해. 그러다가 암 걸렸잖아. 사람들이 그럴 거 아니야, ‘거봐 결국 그러다가 암 걸린다니까. 자기나 잘 챙기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비웃을 것 같아.”


억울하다.

맞지, 억울하지.

그냥 깨끗이 인정해야지, 뭐.

그래, 1라운드 실패. 주인공이 진짜 열심히 했는데 그러다 죽어버렸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실패할 수도 있는 거지 뭐.

2라운드는 죽지 않을 만한 몸으로 기초부터 다시 쌓아보지 뭐.


자존심 상하고, 억울한 그 마음도 수술하면서 암세포랑 같이 다 잘라내 버렸다. 이전의 나는 그냥 이미 죽은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그래, 그냥 다시 시작해야지 뭐. 이제 진짜 믿음으로 살아봐야지. 이제 내가 해보겠다고 애쓰지 말고, 진짜 믿음으로 살아봐야지.


나는 애쓰면 암 걸리는 몸이다. 나는 나약한 존재다. 내가 다 못한다. 나는 그렇게 잘나고 대단하지 않다. 인정해야지 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천히 체력부터 이 땅에서 내 영혼을 담고 살아야 할 육체부터 새로 만들어 봐야겠다. 완전히 몸에 익을 때까지, 습관이 될 때까지.


다른 것 아무것도 하지 말기.

나는 한꺼번에 여러 개는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미련하고 느리다.

하나씩 해 보자.


나의 기도


하나님 나의 이 마음을 받아주소서
나의 평생에 소원을 들어주소서

가난함을 나의 부로 삼게 하고
낮아짐을 내 명예로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고난 중에 주를 높이게 하고
잠잠히 행동케 하며
나의 죄악 중에 항상 십자가 보게 하소서

그 은혜로 매일 살게 하소서


송정미의 '나의 기도' 찬양 링크입니다.

https://youtu.be/k4I_mg_3BC4?si=ceOjY36boU14RV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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