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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Mar 15. 2023

월드컵, 그 뜨거운 함성

내 생에 잊지 못할 하나의 명장면

때는 2018년, 제가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지도를 맡은 지 2년째가 되던 해였습니다.


두 번째 시즌은 모두의 기대가 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017년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컵 야구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단단한 저력을 보여주었고, 2018년도 야구 월드컵이 열리는 곳이 미국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기쁨이 찾아와주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을, 그것도 국가대표의 자격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설레는 나날을 보내곤 했습니다.


대표팀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평가전을 열었을 때 참가한 선수는 120명 정도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작년과 거의 변함없는 스텝들과 일을 할 수 있어 훨씬 수월하게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왜 자신이 대표팀이 되어야 하는지 절실한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곤 했습니다. 성적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는 자리에서의 제게 필요한 '버팀'이란, 훨씬 더 세밀하고 정교하며 단단한 자아가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120명에서 60명, 60명에서 30명, 30명에서 20명까지 테스트를 진행하였고 결국 최후의 20인과 함께 4명의 코칭스텝은 그렇게 2018년을 함께 걸어갈 한 팀이 되었습니다.




그 해 주장을 맡은 꽉꽉이 대연 선수는 팔꿈치 부상에서 온전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팀을 위해 주장이라는 중책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었습니다. 코칭스텝 눈치 보랴, 선수들 대변하랴 몸이 많이 고단 했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언제나 웃으며 선수단을 이끌어 가는 모습에 늘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선수였습니다. 대표팀의 큰언니로 가장 나이가 많던 40대 희연선수는 막내인 17살 지연이 보다 23살이나 많았지만 다른 선수보다 한발 더 뛰고 한번 더 파이팅을 외치는 열정 가득한 백전노장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이가 자신의 걸림돌이라는 오해를 스스로 씻어내고자 노력한 결과였죠. 결혼을 했다면 지연이 만한 딸이 있었을 것이라는 팀원들의 놀림에도 지연이를 정말 '우리 딸'이라고 부르는 여유에 저는 연신 감탄이 새어 나왔습니다.

 

올해도 유격수와 2루수를 맡게 된 희수는 저와 포지션이 같다는 이유로 가장 혹독하게 훈련시켰습니다. 평일 저녁마다 외부 코치님에게 따로 레슨을 받던 희수는 스스로 자신의 하루 엄격하게 통제하며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멋진 선수였습니다. 서울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하는 현지는 삼진을 먹으면 화를 참지 못하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친구였습니다. 몸이 뻣뻣해 현지의 별명을 '뻑뻑이'라고 부르자 팀원들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현지도 그런 별명이 싫지 않은 눈치인지 그래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물해 주어 감사하다며 자신의 뻣뻣함을 인정하였습니다.

 

부산에서 주말마다 올라오던 지윤선수는 원래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롯데자이언츠 야구를 보다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해봤는데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습니다. 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경기도 화성임을 감안하면 지윤선수는 매 주말마다 왕복으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습니다. 이따금씩 짠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어 따로 휴식을 부여하고 싶었지만 팀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대한 저에게 오히려 서운함 보단 훈련하는 것이 훨씬 재밌고 좋다며 코치를 다독이는 속 깊은 선수였습니다.

 

많은 훈련과 땀이 어우러져 무더운 열기가 가득한 8월, 저마다의 사연과 기대를 품은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국의 야구장


미국의 하늘은 정말 깨끗했습니다. 경기에 대한 많은 장면을 그려가며 오로지 승리를 향한 마음으로 미국에 도착했지만 처음 야구장을 보았을 때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던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교사로서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장면을 보았다고 자부했지만 미국에서의 야구장 첫 장면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오랜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상됩니다.


유난히도 높고 맑은 하늘과 초록색 잔디, 햇볕에 일렁이던 아지랑이,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애국가와 너무나도 고요한 관중석까지 그 풍경이 실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밑바닥 어디쯤 잠겨 있던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었던 대학교 선수시절, 홀로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으며 쫓기듯 공부하던 고시생 시절, 대표팀 선수들과 웃고 울고 소리 질러가며 훈련하던 풍경들이 짧은 순간 전부 스쳐 지나갔습니다. 더 멋진 삶을 살고 싶어 처절하게 노력했고 애태우며 살았던 과거의 결과물이 야구장의 한 장면을 통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를 벅참과 감동에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남은 경기를 위해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그 해, 저희 대표팀은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성적표를 받진 못했습니다. 14개의 국가가 참가한 월드컵에서 8위라는 씁쓸한 성적표가 돌아왔습니다. 선수들도 기세가 대단했지만 결과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회였습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한국에서 오신 기자님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 결국 저는 아쉬운 마음에 삐져나오는 눈물을 삼키려 노력해야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부족했던 부분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으며 1년 동안 저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늘 한발 늦게 찾아오는 후회가 그 날 따라 너무 밉게만 느껴졌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저녁, 각자의 방에서 나온 간식거리들과 맥주로 선수들과 조촐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것이 못내 아쉬웠거든요.

 

언니들과 헤어짐이 아쉽다고 눈물을 흘리던 혜연이, 자신이 부족해서 경기에 진 것 같아 죄송하다며 눈물 보이던 든든한 투수조 주장 혜영선수, 우는 혜영선수를 보고 짓궂게 장난치던 수빈이, 사실은 훈련 전날 몰래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양심 고백을 하던 두나, 남는 건 결국 사진이라며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던 경민이까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던 장면을 살면서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요?


대표팀을 그만둔 지 벌써 2년이나 흘렀는데도 그때의 감동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곤 합니다. 주말이 되면 화성에 가야 할 것 같고, 월요일이 되면 훈련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선수들 모두 저와 같은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너무 궁금하구요.


WBC 야구월드컵의 열기로 한층 취해 있는 요즘, 이 글을 빌려 하나가 되어 똑같은 걸음을 맞추던 우리 팀원들 모두가 안녕하고 건강하길, 그때 그 시절 찬란히 빛나던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길 바라봅니다.


                                      <2018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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