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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Sep 02. 2023

다시 돌아간다면 난, 스물!

때는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즌이 끝난 11월 무렵이었다. 대학교 훈련에 합류하라는 연락을 받자 군대라도 보내는 냥 가족들의 걱정을 한 몸에 안았다.


"우리 임장군, 선생님 선배들 말 잘 듣고 아프지 마라 아가야" 할머니의 걱정 섞인 응원을 뒤로한 채 조용히 부모님과 차에 올랐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추우니깐 얼른 들어가세요 바람이 차요"


두꺼운 털옷을 여미며 우리 차를 마중하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고 나서야 비로소 대학생이 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1시간 20분, 전라북도 익산의 중심인 원광대학교가 내가 가야 할 행선지였다. 처음 숙소에 들어가 보니 아저씨 같은 선배들이 바쁘게 빨래를 나르고 있었다.


"누구냐?"

"안녕하십니까! 신입생 임동필이라고 합니다!"

"아! 파송송? 반갑다~ 잘해보자~"


이미 몇 차례 교류전을 가진 터라 안면이 있던 선배들은 내가 파송송계란탁 영화 아역배우를 닮았다며 파송송이라 부르곤 했다.


긴 복도를 지나 창고 같은 방으로 안내를 받은 나는 동기가 될 친구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동기들이 내가 선배인 줄 알고 부리나케 인사를 하는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도 신입생이야ㅎㅎㅎ 난 임동필! 반가워~"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친구들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스무 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자! 뭐 별거 있겠냐? 저 너머에, 그리고 또 그 너머에 무엇이 있건 두려운 건 없다. 우린 미치도록 젊으니까! -영화 스물 대사 중-


나를 포함한 8명의 동기는 빠르게 대학생활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처음 마셔본 술, 설렜던 첫 미팅, 처음 만나게 된 여자친구까지 동기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차곡히 써내려 갔다. 그중 가장 설레고 재밌었던 기억은 탈출이다. 모두가 잠든 시각 은밀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야 형들 자냐?', '응 근이형은 잔다 대식이형은?' '대식이형은 자는데 아.. 박우진 안 자고 여자 친구랑 계속 통화함 짜증 난다 ㅠ' '우리 먼저 간다 이따 나와.


서로 사인이 끝나면 1층 창고 옆 조그마한 개구멍(가로 50cm 세로 50cm 정도의 작은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뚱뚱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살금살금 소리를 죽인 채 먼 길을 돌아가다 정문을 나서는 순간 안도감이 몰려온다. "대박! 아까 승윤이 형 우리 본거 아니냐?", " 아까 발소리 승윤이 형이었어? 아 그럼 들켰을 거 같은데.." "아 몰라, 봤으면 전화 오겠지 어차피 걸린 거 그냥 재밌게 놀다 오자!"


그땐 참 용감했다. 걸리면 1시간이 넘는 얼차려가 기다려도 얼어죽을놈의 패기로 고통 보단 허세가 앞서는 서툰 스물의 세계였다. 없는 돈으로 시킨 5천 원짜리 해물라면, 안주는 무조건 술 한잔에 한 번씩, 국물이 없어지면 물을 계속 넣어가며 간을 맞추었고 그것마저 없어지면 조그마한 콜라를 시켜 소주 한 모금과 콜라 한 모금을 번갈아 마시며 가난과 낭만으로 스물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우리 학번이 가장 사고뭉치들이 많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코치님은 어느새 팀의 감독님이 되셨고, 그렇게 우리 학번은 아직도 전설처럼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결혼식에 동기들과 모였다. 이제는 제법 어른이 됐는지 가정을 꾸려 모임에 참석하는 동기들이 많아졌다.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늘 반갑고 신이 나지만 함께하지 못하고 아직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내 친구 퐝구. 나와 가장 많이 붙어 다니고 가장 많이 싸웠던 아이. 24살, 부푼 꿈을 차마 펼치지도 못한채 사고로 떠나버린 내 분신같은 벗. 오랜만에 그가 떠올랐다. 내 인생 가장 뜨거웠던 스물의 공간에 늘 함께였던 까불이 내 친구.


퐝구! 잘 사냐? 그곳은 어때? 재밌게 잘 지내고 있지? 우리는 제법 많이 바뀌었다.

찌롱이는 결혼해서 예쁜 딸도 있고, 멍식이도 결혼해서 딸 낳았어. 애기들이 다 엄마 닮아서 참 다행이더라~

복끼리도 작년에 결혼했는데 와이프가 기가 쌔서 엄청 잡혀 사는데 나한테는 죽어도 결혼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더라 웃기지? 지는 해놓고 나 보고는 하지 말라고 난리야 참나... 라미는 여전히 사차원이거든? 저번에 하얗게 탈색을 하고 나타났는데 얘는 언제 철드는 건지 우리한테 욕 좀 먹었어. 너였으면 아마 찰지게 잔소리 좀 했을텐데 네가 없으니깐 군기반장이 없더라. 뭐 그냥 이렇게 다들 열심히 산다.


우리 벌써 35살이나 됐어 신기하지? 예전엔 30살만 도 엄청 아저씨 같다고 그랬는데 남들한텐 이제 우리가 아저씨다. 대학로 가면 우리가 걷던 길도 많이 바뀌고 술집도 다 바뀌어서 없어지고 야구장도 예전 분위기가 아닌 거 같고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는데 너만 예전 그대로인 거 같아서 슬프다. 괜히 미안하네.


네가 계속 우리 옆에 있었으면 정말 유명한 프로선수가 돼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친구들한테 잔소리도 좀 해가면서 더 재밌는 일이 많았을 텐데. 내가 너 보내는 날 가서 기도 많이 했잖아 그곳에선 더 행복하라고, 그리고 나 잘 살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달라고. 기억나지? 네가 나 잘 지켜준 덕에 꼴통이 별명이던 내가 어느덧 교사 돼서 열심히 살고 있다. 요지경 세상이야 정말. 그냥.. 너한테 고맙다고.


아직 24살인 너는 어때? 안녕하지? 지금 곁엔 없지만 퐝구 넌 우리의 영원한 벗이고, 동반자인 거 알지? 모두 널 추억해. 찌롱이랑 한번 보러 갈게.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또 인사할게. 나 간다! 또 보자 내 친구 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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