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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Nov 25. 2022

달려! 거북!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거북이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의 세기의 경주가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출발점에 선 토끼는 생각했다.

'반드시 느림보 거북이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말겠어!'


출발점에 선 거북이도 생각했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래, 빠르게 달리기보단 꾸준하게 달려보는 거야'


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토끼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토끼는 신이 났다.

'역시 저 느린 속도론 날 이기지 못하지! 시작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재미없는 경주가 되겠구나!'

결승선에 거의 도착한 토끼는 거북이가 어디쯤 와있는지 돌아보았다. 저 멀리 땀을 뻘뻘 흘리며 느릿느릿 기어 오는 거북이를 보자 사르르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순간 토끼는 생각했다.


'넌 나를 따라잡기엔 멀었구나, 역시 난 누구보다 빠른 속도를 갖고 있단 말이지! 이번 경기가 끝나면 누구에게 경기를 신청해 볼까?' 생각이 많아진 토끼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다음 경주 상대를 생각하는 사이 잠이 들었다.


그 사이 거북이도 꾸준히 달려 결승선에 다 이르자 웬일인지 토끼는 잠에 취해있었다. 하지만 완주가 목적이었던 거북이는 개의치 않고 한 걸음씩 더욱 힘차게 내딛기 시작했다.

'꾸준히 달리니깐 결승선이 보이는구나. 조금만 더 힘차게 달려보자!'


결국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건 속도는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린 거북이의 몫이었다.


토끼가 진 까닭은 잠이 많아서가 아니고 달리기 경주의 초점이 오로지 거북이에게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이긴 까닭은 속도가 빨랐음이 아니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달렸기 때문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달려온 거북이가 승자이다. 다만 어리숙한 경기를 하다 1등의 자리를 내어준 토끼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살면서 처음인 경주에선 누구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때론 넘어지고, 때론 길을 잘못 들며, 그렇게 우리는 달리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오롯이 완벽한 경주는 없으므로."



**


점점 고조되는 양극단의 사회, 청년실업자 30만이 훌쩍 넘는 수치,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결혼과 연애를 포기하는 청년들, 더 이상 품지 않는 희망, 그리고 끝내 자신의 생을 놓아버리는 사람들. 아쉽게도 우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다.


돌아보니 나도 항상 토끼처럼 살아왔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바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났다. 운이 좋아 앞서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사람의 노력과 열정, 숱한 고민은 쳐다보지 않고 못 본 척했다. 그런 결핍되고 왜곡된 감정들을 나보다 뒤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 삼곤 했다. 그래도 뒤에 있는 저 사람보단 빠를 것이라며.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마음 한구석이 가난하고 허기졌다.


술로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 쇼핑으로 가면 쓴 나를 만들어내며 SNS의 자극적인 영상들을 통해 감정의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변화가 필요했다. 나도 반드시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므로, 쇼핑이나 가면을 쓴 내 모습 따위로는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았으므로.


타인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나를 돌보는 데 집중했고, 타인과 나를 저울질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곤 최선을 다해서 이뤄보기로,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그 어떤 것보다 나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조금은 뻔뻔하고 이기적으로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운동으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TV와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나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곤 했다.


물론 삶에 큰 변화가 오거나, 대단한 목표를 이뤄가며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일들이 펼쳐지진 않는다. 여전히 서툴고, 이따금씩 마음이 허기지며, 또다시 지켜내지 못한 다짐들이 생긴다.


그래도 고무적인 변화는 현재 내가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스스로 대한 감식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기분이나 태도, 감정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보듬어주며 인정하는 방식을 통해 타인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진정한 '나' 자신이 원하던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북이처럼 느려 보일지라도, 가끔은 불안정하더라도 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마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에 집중할 수 있는 경주도 꽤나 값지고 멋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나로 인한, 나를 위한, 나의 삶, 나의 이야기. 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의 형태임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조금 느릴지라도 나를 위해 힘껏 걸음을 내딛는 거북이가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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