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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Jun 22. 2024

야나할머니와 보리뚝

맛보다 색, 맛보다  추억

2024년 6월의 보리수

"야야 니 내하고 버리뚝 따러 안 갈래?"


"할머이 보리뚝 따러 갈라고?"


"오이야, 저기 너매 상앳집 뒤에 버리뚝 마이 익었드라"


"할머이 빠께쓰를 들고 갈까? 바가지를 들고 갈까?"


"용하기도. 이제 버리뚝 장시해도 되겠네. 둘 다 챙기래이"


나는 할머니의 칭찬에 우쭐거리며 동네 아이들이 절대 건너지 않는 다리를 지나 보리뚝을 따러 간다는 긴장과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역시나 상엿집 뒤에는 빨갛게 익은 보리뚝으로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아이고야 많기도 많기도. 아주 으러지게 잘 익었네"


할머니가 빨갛게 익은 보리뚝을 몇 알 따 입에 넣어 맛을 보시곤 더 많이 따서 내게 내미셨다.


"음~ 엄청 맛있게 익었네. 근데 할머이 꼭다리 있게 따? 없게 따?"


"꼭다리 띠고 따믄 버리뚝이 응개지이 꼭다리 달고 따래이"


나는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보리뚝을 한 줌은 바가지에, 한 줌은 입에 넣으며 열심히 양동이를 채워갔다.


"할머이 이거로 또 기침약 맹글끼여?"


"오이야. 또 기침약 맹근다. 이제 도 반의원 다 됐네 히힝"


할머니가 우습다는 콧소리를 내며 웃으셨다.

 



보리수 청, 석 달 뒤에 만나자

"엄마랑 보리수 따러 안 갈래?"


작은 아이에게 사정하듯 졸랐다.


"보리수가 맛있게 익었어. 자 먹어봐"


"음 이런 맛이구나. 근데 엄마 이게 보리수였어?"


"헉, 너 보리수인 거 몰랐어?"


"당연히 몰랐지. 엄마가 말 안 해줬잖아"


"나는 네가 안다고 생각해서 말 안 해줬지. 보리수가 표준어고 엄마 때는 보리뚝이라고 불렀어. 이것 봐봐 겉에 까끌까끌하게 먼지 같은 게 붙어 있지? 이거 박박 씻는다고 엄마가 어렸을 때 한 바가지 다 터트려놨었잖아. 이게 야생 보리수도 있거든. 그건 가을에 먹는데 진짜 보리쌀만큼 작아한 삼십 분 따서 한 입에 다 털어 넣으면 먹는 것보다 뱉는 씨앗이 더 많았었어"


나는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며 작은 아이와 보리수를 수확했다.




보리수 청은 오미자만큼이나 색이 곱다. 석 달 뒤에 청으로 떠서 기관지염으로 고생하시는 친정 아부지께도 드리고, 비염으로 재채기가 잦은 남편과 작은 아이에게도 먹일 생각이다.


계절계절마다, 해마다 갖가지 꽃과 열매로 나를 반겨주는 반가운 식물들.

그 식물들에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고 또 현재 나의 추억들을 담아가고 있다.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한 닢 한 닢 모아 꽉 찬 돼지를 잡던 행복했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삶의 저금통에 추억을 한 닢 한 닢 담으며 살아가는 요즘이 정말 좋다.

부디 맛으로 색으로 추억으로 행복으로 담은 보리수청이 잘 우러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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