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모래알을 세어내며
머릿속을 긁어낸다.
모래알 한 톨마다 내가 왜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조금만 더 솔직해져 봐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거니? 정신병자처럼?
참을성 없고 끈기 없고 생각이 얕아서
내 생각만 해서 그렇다고?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무슨 상관이야.
정말 오늘 안에 한 톨 한 톨 공원에 모래알을 다 헤아릴 심산으로 머릿속을 헤집는다.
문득문득 갑자기 불현듯 익숙한 일을 할 때면 그냥 머릿속은 모래 천지가 되어 버린다.
뭘 하든 뭘 했든 사건 하나가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바보 같은 내가 떠올라 머릿속이 엉망이 된다.
대대적인 인생 역전의 사건이 일어난 마냥 엄마와 동생 앞에서 하루 일과를 아니
나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을 얘기하다 보니 우울한 우리 집에 한 번씩 웃음이 스쳐갔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는 나를 망가뜨려 웃음코드를 지키려고 매일매일 스토리를 짜냈다.
하지만 웃음은 잠깐 그 뒤에 돌아오는 핀잔과 비아냥 그리고 훈계를 참아야 한다.
네가 그러니까 그렇지... 네가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했어야지... 어이구 바보야.... 엄마의 핀잔에는 늘 비아냥과 안쓰러움이 함께 있다.
언니! 그걸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조곤조곤 a형인 여동생 답게 아주 조곤조곤 얕은 소리로 행여 o형인 내가 폭발이라도 할까 봐 눈치 보며 하지만 할 말을 다한다.
늘 내가 그냥 웃기 위해 하는 말에도 이들은 늘 훈계를 일삼았다.
그래서 그냥 그만뒀다.
나의 개그콘서트는 관객과의 불협화음으로 배우가 포기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매일 스토리를 짜내느라 고민할 필요도 즐거운 척할 필요도 괜히 나를 망가뜨려 어설픈 개그맨이 될 필요도 없어졌다.
그건 나이가 많아진 지금도 똑같다.
이들은 내가 뭘 하든 뭘 했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훈계를 잊지 않는다.
걱정한다. 사랑한다. 는 죄목 아래 날 어린아이 취급하며 늘 뒤에는 비아냥 거리는 걸 잊지 않는다.
엄마는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면 나를 부르고 나에게 의논을 하는 듯 얘기해달라 조르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동생과 결론을 맺고 만다.
매번 그런 걸 알면서 또 간곡히 조르면 난 맘이 안돼서 참여하고야 만다.
귀안에 중이염을 방치한 죄로 엄마는 귀안에서 계속 고름이 나오는데 매일 소독을 가는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이면서 현재 백수인 동생은 아들과 캐나다에 가고 없었고 전화를 해서 상황을 말해도 급한 수술이 아니라며 그전부터 계속 엄마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병원에서 별말이 없고 속 시원한 답변도 주지 않아 답답하다며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서라도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곁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매번 돈줄을 데어주는 동생 대신 몸으로 대신하는 내가 모른 척 하기가 그래서 엄마와 쉬는 날 짬을내 병원을 찾았다.
나름 조무사로 일하고 있던 병원에서 가끔 환자들에게 소개해주던 유명한 교수님이 와 계신다던 2차 병원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2차 병원 의사 말은 수술은 어렵지 않다. 진주종이 생겨 있는데... 문제는 엄마의 과거 병력 때문에 2 차급에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고 3 차급 대학병원을 가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폐암으로 양쪽 폐 3분의 1씩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폐암 환자이다.
노인이라 나이로 인한 마취 위험도 큰데 폐가 남들보다 좋지 않으니 마취의 위험은 더더 높다.
결국 귀안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만 알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나중 뒤에 안 사실이지만 동생은 그럴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좀 뒤에 본인이 오고 나서 해도 될 수술이라 기다리라고 한 건데 엄마는 기다리기가 싫었던 거다.
괴롭다고 내가 갈 때마다 그래서 내키지 않았지만 나 역시 뭐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러면 멋지게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2차 병원에서 써준 의뢰서로 3 차급 병원에 가라고 안내만 해주고 나는 그 주내 내 쉴 수가 없어 엄마는 혼자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전화가 와서 노발대발 병원이 뭐 그렇냐고 화가 단단히 났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마도 한쪽 귀가 그래서 잘 듣지도 못하는 노인이 혼자 온 것 자체에 피곤해하는 간호사며 의사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친절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급 의사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게다가 노인과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론은 병원시설도 마음에 안 들고 의사 태도도 맘에 들지 않는 단다.
수술도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말했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연락을 해보니 동생과 통화하고 그냥 서울에서 수술하기로 하고 서울병원에 예약을 했고
검사하러 곧 서울 간다고 했다
하.....
매번 이런 식이다.
난 뭘 한 건가.....
매번 난 헛짓을 한다.
난 또 바보가 된 기분이다.
헛짓거리.... 바보.....
그리고 엄마는 수술 날을 받고 또 계속 나만 보면 수술 당일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간병인 대준다는 동생말에 아랑곳 않고 불편해서 싫다.
하루면 되는 데를 중얼거렸다
난 일을 하고 있어 뺄 수도 없고 수술 때마다 나는 간병인으로 기다리는 사람인 양 당연시하는 게 싫어 쉬는 날을 뺄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만 똥개처럼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동생이 전화 한 번이면 대학병원 수술 날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해결될걸 조금만 기다리라 했는데 날 데리고 안 되는 일을 하며 날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쓸데없는 일을 하게 만든 엄마가 미웠다.
매번 이런 식이다.
중얼거리는 엄마에게 하루면 되느냐 했더니 부산 내려오는 기차 타야 하는데 내려올 때도 혹시나 해서 겁난다고
이틀은 절대 안 되고 하루만 쉴 수 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쉬는 날 봐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하고 있는데... 그냥 간병인 부르면 안 되겠냐 소리가 목구멍에 차올랐다.
수술 당일 서울 사는 동생 남편이 수술을 봐주고 다음날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럼 난 안 가도 되겠네 했더니
꼭 와서 기차역에서 기다렸다가 내려가는 기차를 같이 타 달란다.
그래서 나는 기차를 타고 수서역에 내려 엄마와 기차를 다시 타고 부산에 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냥 동생은 캐나다에서도 핸드폰 하나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는데
나는 뭔가...
늘 똥개가 된 기분은
내 자격지심인 건가.
내가 문제인가.
내가 모자란 탓이기만 한 건가.
오늘도 모래알을 얼마나 헤아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생과 어릴 때부터 쑥떡쑥떡 잘 맞아떨어지는데 왜 자꾸 날 불러 똥개 훈련을 시키는 건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없어 보여 싫다.
엄마에겐 힘없는 딸이 그거라도 해서 맘 편하라는 배려인 건지 내가 너무 꼬인 건지
초등 아이 달래듯 나중 무거운 맘 벗으라고 할 일을 주는 건지
뭔지 놀아나는 기분에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불쑥불쑥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엄마와 동생 앞에만 가면 커져 너무 힘들다.
피하고 싶다 날 찾지 않았으면
거기에 있는 내가 제일 싫다.
연락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것 조차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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