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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Apr 07. 2022

上. 저요? 작가를 하기로 했습니다.

잠시만요 쌤 그냥 말만 한 건데

   한창 뽐내기 좋아하는 열여섯은 언제나 멀고도 험한 길을 걷는다. 같은 반 학생인 재수 없는 도토리 학생과 치열하게 몸으로 치고 다투며(대충 머리까지 쥐어뜯고 살았던 사이다.) 이러쿵저러쿵 제일 폭풍 같은 시기를 지나고 나니 벌써 중학교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십오 세. 15살이자 중2병이 걸린다는 그 시기. 그 파란만장한 시기를 겪고 나니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는데 대뜸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나의 꿈에 대해 물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표정에서 어떤 근심이 어린 것을 목격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바닥을 치지도 않고 위로 오르지도 않는 굴곡 없는 중간 지점의 성적이라던지. 매번 나의 꿈 목록에 대충 경찰이라고 적어두는 성의 없는 태도라던지. 그런 것을 보고 있으니 내심 선생님의 마음으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러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공식적으로 막 끝내고 돌아온 열여섯은 그 모든 걱정들이 조금 귀찮았다. 어른? 솔직히 나이만 먹은 아이가 아닌가. 귀찮았다. 진심으로.

   허나 선생님은 날 절대 포기하지 않을 심산이신지 수업종이 치고서도 나를 그 자리에 가만히 앉혀두고는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 문자를 보내시는 게 아닌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시간이 시작되었는데 선생님은 날 보내주지도 않더니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더라.



   담임쌤: 오늘 음악시간은 안 가도 돼. 점심은 선생님이랑 같이 먹자.



   선생님은 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라는 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 자리가 너무 어려웠다. 우리 집은 나를 포함한 자녀 셋에 부모님, 조부모님까지 모시고 두루두루 엉켜 지내는 대가족 7인 식구였기 때문에 웬만한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을 대하는 것이 더 마음 편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지. 선생님께서는 나의 문제점이 뭔지 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발 벗고 나서려고 하시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면 나는 더욱 물러나는 사람이었다.

   생활기록부에도 분명 그렇게 쓰셨었다. 다른 건 하나 기억이 안 나지만 유독 낯을 가리는 기질이 있다는 문구는 꼭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는 몰라도 중학교 선생님들은 웬만하면 생활기록부에 좋은 것만 써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써주신 걸 보면 내가 엄청 낯을 가리고 선생님들과 내외하긴 했는가 보다 싶다. 하여튼 그렇게 단 둘만 있는 교무실에서, 우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선생님은 내 앞에 앉아만 있었다. 거의 10분 정도 지났는데 10년 정도 흐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담임쌤: 경찰이 하고 싶어?

   타인: 어... 네.

   담임쌤: 얘. 정말 경찰이 하고 싶은 게 맞니? 다른 친구들은 다 뭐가 하고 싶다고 성실하게 적었는데 너만 아직 그걸 하고 싶은 이유가 없어서 묻는 거야.



   꿈을 찾으라고 몰아세운다. 그래야만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담임쌤: 이제 겨우 중학교 끝물까지 왔는데 너도 성인이 되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진짜 개 열 받았다.

   내가 자라나서 당당한 식충이 라이프를 산다고 한 적 있던가? 나도 뭔가를 하기야 하겠지.


   그래서 나는 대뜸 한글날 기념으로 글짓기를 하는 이 학교의 행사에 참가를 해 당당하게 내 꿈에 대해서 썼다. 한글날이니 대충 거기에 맞춰서 글을 쓰라며 세 가지 주제를 내주셨는데, 나는 그 세 가지 주제 중 하나를 토대로 하여 꾸며 쓰기 시작했다. 겉은 한글날, 속은 꿈 이야기.

   꿈에 대해서 썼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꿈을 꾸라며 몰아세웠던 선생님께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일 수도 있고 세계일주 하는 것이 꿈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직업을 꿈으로 가져야 하는 것인지. 하물며 내가 지내는 마을로 가는 길목도 굽이굽이 구부러진 길목인데 왜 자꾸만 곧장 갈 수 있는 평지에서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도. 선택과 후회는 늘 나의 몫이며,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왜 그렇게 난리인 건지. 그런 내용들을 쓰고 말았다. 다 쓰고 내버리니 그제야 후회가 되더라.

   난 그날 첫 후회를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 정말 굽히기는 싫었다...)








   � 3학년 1반 타인 학생은 교무실로 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3학년 1반 타인 학생은… …



   올 것이 왔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저에게 힘을 주세요. 정학이나 전학이나 그런 걸 선택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벌점 0점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벌점 1점도 굉장히 큰 타격이었다. 그 하나를 지우려면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에 벌은 절대 받기 싫었었다. 하여튼 구부러진 길목 어쩌구 했던 것들은 죄다 취소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결국에 평평대로인 복도 끝 교무실에 도착해 교장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



   상을 받았습니다.

   허허, 무려 장원을요. 하여튼 이 학교도 제정신은 아닌가 보다 싶었습니다.



   상장을 받고(사실  안에 들어있는  원권 문상이  좋았지만) 얼떨떨하게 교실로 가기 위해 올라가는 순간 마주친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했다. 선생님도 보셨겠지 싶기도 하고 너무 신랄한 비판조로   아닌가 싶었기 때문에 내가 너무 건방 떨었다 후회했다. 후련은 했으나.  순간의 후련함으로 살아가기엔 세상은 녹록지 않다. 담임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기엔 나는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고개를 숙일 수밖엔 없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긴 뭐해서, 나는  기회에 그냥   질러보기로 마음먹었다.



   타인: 쌤. 저 작가가 꿈입니다.

   담임쌤: 그래... 선생님도 글 봤다.

   타인: 넵...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 앞으로 백일장도 나가고 열심히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담임쌤: 그전에 저기 속초에서 하는 시 문학 대회가 있는데 거기부터 한 번 나가볼까? 그거 말고도 이번에 봄철이라고 열린 공모전이 있는데… …



   당시 내가 간과한 것.

   우리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것도 문학에 징하게 목이 말라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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