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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시각장애인

by 산들바람

'MZ세대'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틀어 지칭하는 인구통계학적 집단으로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출생한 이들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전쟁 또는 극단적 가난과 정치적 혼란의 세월을 정통으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진정한 자유주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의식구조와 행동양상이 기성세대와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시각장애인조차도 안마피리를 불며 거리를 헤매다 겨우 안마받을 사람을 찾아 입에 풀칠을 하던 선배세대에 비하면 오십 대 중반의 남편 세대의 고생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일이다.

그러니 MZ 세대의 시각장애인, 또는 십 대와 이십 대의 시각장애인은 어떻겠는가....

남편이 청년시절이었을 땐 복지콜이나 나비콜이 없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버스번호를 볼 수 없으니 차 문이 열릴 때마다 몇 번 버스인지 물어야 하지만 쏘아붙이듯 화를 내며 대답하거나 그마저도 대답도 없이 차 문을 닫고 그냥 출발하는 일도 많다.

그러자면 뒤에 자신이 타고 가야 할 버스가 와 있었어도 모두들 차 문을 닫고 출발해 버리니 첫 번째, 두 번째에 내가 타고 가야 하는 방향의 버스가 오지 않는다면 하릴없이 기다리고 서 있어야 한다.

한 번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행이지만 갈아타야 할 때는 더 곤란해진다.

정해진 버스정류소가 아닌 곳에서 내리다 갓길로 오는 오토바이에 부딪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이러저러한 보행 사고가 잇따랐다.

지금은 부모들이 자가용으로 등, 하교를 시켜주니 교통에 대한 걱정 없이 다닐 수도 있고, 적어도 복지콜과 나비콜 서비스가 있으니 이동에 대한 제한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도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불편하기가 말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과거엔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 또한 없던 시절이니 보행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먼 길을 나갈 엄두조차도 낼 수 없는 시각장애인도 허다했다.

서울 맹학교도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이용하는 학생이 없다. 몇십 년 전엔 숙식이 제공되는 학교를 고아원쯤으로 인식했는지 앞 못 보는 자식을 버리고 가는 일도 허다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홈커밍데이 행사가 열리면 원근각처에서 찾아온 머리 하얀 선, 후배들이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하룻밤 자고 가는 곳이 되었다.


어쩌면 이동지원 즉, 복지콜과 활동지원사 제도,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각장애인계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편리한 복지 제도와 IT 기술의 발달의 결과로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아련한 정서와 진정한 장애인 자립정신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건 비장애인도 비슷하게 변해간다.

이전엔 전맹 점자 해독률이 90% 이상이었다면 최근의 중도 시각장애인 또는 MZ 시각장애인의 점자 해독률은 5.2%에 불과하며 스마트폰 사용 비율은 88% 이상을 차지한다.

불완전하지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글씨를 읽어주거나 색상, 모양 등을 안내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고, 컴퓨터나 휴대폰 메시지로 정보를 주고받으니 딱히 점자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예전에는 시험도 점자와 낭독, 컴퓨터 등으로 응시했지만 최근엔 점자 시험지를 이용하는 비율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며 MZ 세대는 대학진학률도 높아졌다.

이전과는 다르게 장애인 특례 제도가 있어 대학에 진학하기도 쉬워졌고,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가 있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안마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다른 직업에 도전하는 비율도 이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도 같은 과 학생 또는 기숙사 룸메이트 등 함께 수업을 받고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친구와 선후배의 도움을 받는다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되니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예전엔 기껏해야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면 요즘엔 같은 교사라 하더라도 장애인 의무 고용률이 의무화되어 있으니 일반 학교의 취업문이 훨씬 높아 일반학교 교사로 취업 선택을 많이 하는 추세다.

더군다나 근로지원인 제도가 있어 학교 또는 일반 직장에서 눈이 필요한 보조 업무를 근로지원인이 도와주기 때문에 더 수월해졌다.

근래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마시장이 잠식당하며 수급자로 살게 되는 비율 또한 월등하게 높아졌다.

나라에서 주는 수급비를 받고,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집안살림부터 보행과, 직장 출퇴근까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 안정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물론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인데 남편 세대만 해도 안마사라는 직업을 갖고 혼자서 도보 또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새벽이든 밤이든 구공탄을 수차례 갈아 가며,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해 입던 세대였으니 이것이 진정한 장애인 자립이 아니겠느냐는 다소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데 반해 MZ 세대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보행의 도움을 받고, 대기업 내에 헬스키퍼로 취직해 서너 시간 일하거나 또는 수급비를 받고 일하지 않고도 가까운 여행도 다니며 여가로운 삶을 사는 것이 자립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오죽했으면 시각장애인 교사인 지인더러 맹인 학생이 이렇게 물었단다.

'선생님 얼마 버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하세요? 수급비 받으면 일 안 하고도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지인은 이러한 얘길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의 안마 시장이 좁혀지고 비장애인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다 보니 이전과 다르게 장애인은 나라에서 주는 수급비용에 대해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제 젊은 세대일수록 무언의 당위성으로 자리를 굳혀간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포퓰리즘은 그들을 진정으로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성숙함과 실질적 자립을 상실케 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힘들게 일하지 않는 세상이라 일반 안마원에서는 안마사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어린 시절부터 활동지원사를 이용해 온 MZ 세대는 이들에게 요구하는 일에 있어서도 능숙하다.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없던 세대의 장애인은 성격에 따라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 주저할 때도 있지만 십 대에 가까운 이용자일수록 당연한 권리인 듯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이를 무조건 반감의 시선으로 볼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장애인이기에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벨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세대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외부의 시선과 말에 상처도 더 쉽게 받고, 극단적인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이전세대보다 부족할 수 밖에는 없다.


시류에 따른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범국가적, 범세계적 추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 정책을 개선하고 수용할 때, 보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애인이 성역화되어 비장애인이 역차별받는다면 그것은 비장애인과의 사이에서 자칫 적대감만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장애인 스스로도 푸대접받던 시절과 비교하며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받는 것이 당연하고, 떼쓰는 게 당연하듯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과 더불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동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동정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사회적 배려대상자는 분명한 것이니 합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정책이 있어야겠지만 그저 불쌍함의 아이콘으로 살지 않기를 응원한다.


앞으로의 시각장애인은 어떤 위치에서 살아가게 될까?

어쩌면 지금은 과도기의 어느 한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디 의식 있는 MZ 세대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어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가길 소망한다.

작지만 그들의 몫을 소소하게 감당하며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삶을 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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