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얼른 이리 와보세요... 제가 오늘 작곡을 했는데 직접 들려주고 싶어요!!!"
"그래?? 어떤 곡일까? 궁금한데?"
"가사는 없고요. 제목은 '구름기차'라고 지었어요. 발표회 곡 '캉캉'을 치려다 잘못 쳤는데 갑자기 악상이 생각나서 그냥 피아노로 바로 쳐 봤어요"
가게 일이 끝나고 저녁쯤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나를 피아노 앞으로 데리고 가 자신이 만들었다는 곡을 직접연주 해 준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바이엘을 배우고 있을 때쯤 피아노 학원에서 발표회를 한다고 했다. 학원에서는 으레 껏 제 수준보다 한 두 단계 높은 곡을 선택해 집중해서 연습을 시키는데 아이가 발표할 곡은 '캉캉'이었다. 그런데 혼자 집에서 연습을 하다 도입부를 잘못 쳤는데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자신만의 다른 곡을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예쁜 곡, 제목마저 '구름기차'라니...
2학년이 되었을 때, 음악을 전공하셨다는 담임 선생님 앞에서 방과 후 혼자 남아 이 곡을 연주하자 선생님은 아이를 '음악영재'라고 칭찬하셨단다.
5학년, 등교거부를 시작하며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아이를 보고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걱정이 많았던 어느 날 아이가 불쑥 말했다.
"나.. 컴퓨터 음악 하고 싶어.. 미디음악학원 보내줘... 내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음악인 것 같아"
천날만날 휴대폰만 하고 누워만 있던 딸아이가 뭐라도 하겠다니 눈이 확 뜨이는 듯했다. 그냥 휴대폰만 쳐다보고 하릴없이 누워있기만 한 건 아니었는가 보다. 게다가 창의력이 넘치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활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개인레슨 선생님을 알아보고 매주 아이를 데리고 음악실에 가곤 했었다. 세 달쯤 지났을 때였나?
"나 여기 안 갈래..."
"왜?"
"내가 하고 싶은 건 힙합이라고... 그런데 매번 피아노만 연습하라잖아... 난 싫어!"
"그래도 기초가 있어야 뭘 하던가 할 거 아니겠니?"
"싫어... 안 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아이가 겨우 세 달 만에 다시 무기력한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 이후 다른 곳에 가 보자는 권유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한창 자살 시도와 자해를 일삼던 6학년, 아이 방을 청소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일기를 읽게 되었다.
자신은 모르는 곡을 처음 들을 때 기본적으로 네 번을 듣는데 처음엔 전체적인 곡의 흐름을 이해하고, 두 번째는 각각의 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분석하고, 세 번째엔 가사를 분석하며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음악을 다시 조합해서 듣는다고 쓰여 있다.
'아직 음악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구나...'
사춘기가 맹위를 떨치던 중학교 2학년, 다시 미디 학원을 가고 싶다는 얘길 듣고 이전과는 다른 '진짜 힙합'을 가르친다는 개인레슨 선생님을 알아보고 같이 가게 되었다.
첫 수업을 들은 후, 아이가 만든 미디곡을 들은 선생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음악을 이해하고 듣는 폭이 너무도 깊고 뛰어나요..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입니다. 욕심이 생기네요.. 제가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어머님"
하지만..... 너무도 재밌다던 그 학원을 세 달이 지나자 또 그만 다니겠단다....
선생님도 나도 설득해 봤지만 그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과제를 내주어도 제대로 해 간 적도 없고, 갑자기 생각나는 악상으로 곡을 만들어 선생님께 보내곤 했는데 그것도 세 달이 유효기간인가 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여러 방면에 재능이 많았지만 음악에 관심과 재능이 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만 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 영화가 끝나고 모두들 가방을 챙겨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나 또한 소지품을 챙겨 일어나려는데 아이가 내 손을 조용히 잡아끌었다.
"엄마, 저는 이 음악 다 듣고 싶어요"
당시만 해도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엔 별 이벤트 없이 까만 화면에 제작진과 출연진의 이름만 주욱 올라갈 때라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데도 아이는 오직 음악을 듣는 게 목적이었다.
모두들 나가고 난 텅 빈 영화관, 캄캄한 극장 안에서 등을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오롯이 음악을 감상하는 만 세 살의 아이라니....
이후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함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오빠와 동생을 데리고 그날 보았던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들어 인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노는 것이 이 아이의 또 다른 놀이방법이다.
극이 준비되면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아빠, 엄마를 관객으로 불러 앉히고, 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오빠에게 플래시를 쥐어주며 구석에 들어가 분위기에 맞도록 셀로판지 색을 바꿔가며 조명을 바꾸게 하는 등, 혼자 대본을 쓰고, 연출하고, 연기를 하는 게 딸아이의 즐거운 놀이활동이었다.
어려운 클래식 곡도 한 번 들으면 외울 수 있고, 그 곡을 듣고 자신의 감성대로 분석하는 능력도 뛰어난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음에도 꼭 사춘기 이후 제 모습처럼 하다 말다 변덕을 부리더니 고등학교 자퇴서를 내고 와서는 갑자기 네일아트를 하겠다며 학원에 등록해 달라고 한다.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그런데 너는 모르지? 넌 다시 음악을 하겠다며 되돌아오게 될 거야... 얼마 안 있어 곧 다시 돌아올걸? 이건 엄마가 제 자식에게 느낄 수 있는 예감이야... 확신이야....'
겉으론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아이는 머지않아 다시 음악을 하겠다며 되돌아올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 달병이 다시 도져 네일학원은 다니지 않겠단다.
한동안 조용하던 딸아이가 작년 가을쯤 내 예상대로 미디학원을 다시 다니겠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쭈욱 학원에 다니고 있다.
물론.... 결석하고, 과제도 내킬 때 하는 등 속에서 천불이 올라올 때가 너무도 많지만 언제나 그랬듯 아이의 시간에 맞춰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아이는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주어진 길로 가지 않았다.
A가 있어도, B와 C의 길을 굳이 만들어 힘들게 개척해 나갔으며 그 시간은 오로지 자신의 시간표대로 움직일 뿐이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 학원 선생님은 '표현력도 너무 좋고, 이렇게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할 이 아이의 속도가 있지 않을까?
올해 시작부터 '난 이번에 시험 안 보고 재수할 거야!'라며 너무도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던 아이가 올해 시험을 보네마네 하더니 결국 응시를 포기하고 일 년 더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위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던 재학생들도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이며 침울 해 하는 것을 보니 정신이 확 드는 모양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한 듯했다.
오늘도 가방을 메고 연습을 하러 간 것 보면 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8년, 거실 바닥에 노트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뭘까?' 겉장을 넘겨보니 '은갈치의 꿈'이란 제목의 글이 쓰여 있다.
'은갈치의 꿈?'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너무도 궁금해져 막 읽어보려는데...
"아, 뭐야!!! 왜 내 거 허락 없이 읽어!!"
아이가 뒤에서 노트를 홱 낚아채는 통에 궁금한 그 이야기를 제목밖에 읽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으며 정작 자신은 지난날 그런 글을 썼다는 것도 기억을 못 하는 듯했다.
오늘 글의 제목이 '은갈치의 꿈'인 것은 아이가 썼던 제목을 인용해 나름의 해석을 하기 위함이다.
'은갈치'는 내 딸의 모습인 것이다.
중층과 심해를 오가며 사는 어종... 즉 심해에도 살지만 심해어로만 한정할 수 없는 물고기란다.
낮에는 깊은 수심에서 몸을 쭈욱 펴고 조용히 머물다 밤이 되면 위로 올라와 다른 세계를 꿈꾸는 갈치처럼, 바다 깊은 곳에서도 육지에 올라와서도 자체발광하는 반짝임으로 자신의 존재를 화려하게 나타내는 은갈치처럼 딸아이의 인생여정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찰떡처럼 어울리는 일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알고 있지? 너의 꿈은 엄마의 꿈이란다. 엄마는 언제나 너의 꿈을 응원해!!!
'이상하고 특이한 딸이 있어요' 연재가 30회를 맞으며 끝을 맺습니다.
모든 글이 그랬지만 이 연재는 사실상 기억을 위한 나만의 일기와도 같은 글이었으며 추억을 꺼내보는 도구가 되었던 글이었습니다. 또한 딸에게 쓰는 편지와도 같은 글이었어요.
지금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 조금 더 세상을 넓게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을 가졌을 때, 다시 이 글을 읽는다면 딸아이는 어떤 무수한 감정을 느끼게 될지 궁금합니다.
또 한 편의 연재를 끝마치니 후련함도, 아쉬움도 남습니다.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 내 글을 약속된 시간에 연재하는 것에 급급했기에 잠시 쉬어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또 이어가 보려 합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제 의식 속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글로 정리하는 작업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렵지 않은, 잔잔하고 수수한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목표이며 한 발 또 걸어가 보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주 휴재후, 2026년 새 연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무척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