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보다 빠른 아내
남편의 은행 비밀번호를 물어보자
혹여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 개미만 한 목소리로
숫자를 띄엄띄엄 대답했다.
방에는 남편과 나 둘 뿐인데.
뭉그러지는 발음으로 나지막이 뭐라 뭐라 읊조리길래 나는 바로 고개를 훽 들어 얼굴을 바라봤다.
개인정보를 물어봐두면 분명 남편의 기분이 처질 것 같아 미루고 미뤄왔다.
하지만 이미 지역병원 입원을 마쳤고 호스피스 이야기가 나온 이상 지금 아니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모든 서류와 남편 대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자
막막했다.
지금 조금 서운하고 말자라는 생각에
비밀번호나 보험 따위 일을 꺼내자
순순히 입으로 줄줄 비밀번호를 말하면서도
그는 다소 화가 나면서도 시무룩해 보였다.
대충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을 적고 나자
남편은 링거를 달고 침상에 누운 채로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도둑보다 마누라가 더 빠르네"
그렇다.
요즘 남편은 거의 독기를 품은 대머리 치와와다.
모든 일에 불같이 화를 내지만
나약함의 표시라는 것을 그도 나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