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편안하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진단부터 수술까지, 1달여 남짓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참 너무나도 다행이었고, 천운이었다. 내가 유방암에 걸리다니!라고 생각하며 슬퍼하기보단, 이렇게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더 크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처음엔 누구나 마찬가지이듯 슬펐고, 억울했고, 분했다. 그러다 모든 게 내 탓이었고, 나의 문제였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정말 모든 것들이 행운이었다.
3년 연속, 종합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없던 상황에서 검진받고 난 2주 후에 멍울이 잡힌다는 게 다행이었고. 검진 결과를 맹신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의심하고 다시 병원을 2번이나 찾아간 나의 판단도 다행이었다. 정밀검사 결과 호르몬 양성, 느린 타입의 암이었다는 사실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은, 느린 타입의 암인데 3년 동안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검진센터는 무슨 일이냔 말이다.)
또 좋았던 소식은 발견된 암으로 인해 시행된 추가 검사들에서 해당 암 조직 하부에 아주 아주 아주 얇게 분포되기 시작하는 작은 암세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부분 절제에서 전절제로 수술 계획이 변경되긴 했으나, 경우의 수를 제거했다는 것에 매우 행복해졌다.
브라카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었다. 가장 안심을 한 부분이었다. 유전자 변이가 나오는 순간 나와 나의 자매, 나의 엄마, 나의 딸에 이르기까지.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변이가 확인이 되면 암 병변이 발견된 쪽뿐만 아니라 나머지 한쪽의 가슴도 예방적 차원의 전절제를 해야 하고, 이후 난소암에 걸릴 상황에 대비해 난소에 대한 위험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제 수술 전까지 남아 있는 나의 욕심은 림프절 전이가 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거 하나였다. 그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입원을 준비했다. 전날 신나게 싸 놓은 짐을 다시 한번 점검하며 빠진 것이 있는지 체크를 하고 갔다. 병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먹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까 고민하며 좋아하던 음식을 먹었고, 커피를 한잔 마셨다. 입원 수속 직전, 가슴에 수술 부위 체크를 하고 촬영을 마친 후 유방암 환자를 위한 교육이 있었다. 결과적으론 잘 먹고, 간식 줄이고, 살찌면 안 된다는 이야기.
자정부터 시작된 금식, 하지만 수술은 오전 제일 마지막 순서. 많이 배고프고 많이 목말랐지만 참아야지 어쩌겠어. 슬슬 떨리는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한 건 당일 오전 10시가 넘어서부터였던 것 같다. 상주 보호자는 1인만 가능하기에, 엄마가 옆에 계속 있으면 내가 울 것 같아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엄마를 집으로 보냈다. 수술실 들어가는 길에 엄마가 있다면 내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았거든. 덕분에 엄마는 날 못 지켜주고 울면서 속상한 마음 안고 집에서 대기했고. 나의 슬픈 마음은 오롯이 남편에게 전가된 꼴이었다.
6층 수술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의 분주함 속에서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 천장의 성경 구절.
두려워하자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 이사야 41장 10절
이거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의 요동은 수술실 입실과 분주함, 마취가스 흡입 5번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숨 크게 쉬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사라졌고, 갑자기 달그락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나를 인지하자마자 오빠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수술은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렸다.
너무 졸렸다. 그냥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무 졸렸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쉴 새 없이 졸렸다. 수술 결과는 너무 다행스럽게도 림프 전이가 없었다. 4개가량 림프 조직을 확인했는데, 전이가 없었다고 했다. 확장기도 아무 이상 없이 잘 안착했고. 보존한 유두도 잘 살아있다. 수술 부위도 당초 들었던 것에 비해 절개가 적어 보였다. 너무너무 졸렸고, 자고 싶었고, 딱히 아프지도 않았다. 이 모든 건 아직 체내에 남아있는 마취 가스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모르핀 성분의 무통주사와 진통제 덕분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왔다. 엄마를 보니까 씩씩해지고 싶었다. 남편 앞에서 앓던 소리는 갑자기 쏙 사라지고, 엄마 앞에서는 씩씩해지고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갖고 움직이니까 진짜 빨리 회복했다.
병동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교수님들이 휴가가시는 기간이었을까? 비어있는 방도 있었고, 2인실인 내 방도 첫날 빼고 3일을 내내 1인실처럼 사용했다. 2개의 배액관이 주렁주렁 대롱대롱. 불편한 컨디션에 약 기운까지 겹쳐 변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나름 잘 버텼던 것 같다. 4박 5일 안내를 받았지만 6박 7일 후에 퇴원을 했다. 마지막 2일은 새로운 환자분께서 들어오셨고, 10시간을 꼬박 거쳐 난소암 수술을 받고 올라오셨다. 입원하신 수술 전날 밤, 밤새 울고 두려움에 떠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근데 아무리 운다 해도 이미 내 몸에 있는 암은 줄어들지 않으니, 수술 전날은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컨디션을 잘 챙겨야 할 텐데 저래서 내일 얼마나 힘드실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술실에서 늦은 오후에 올라오신 그분은 결국 밤새도록 아파하셨다. (그리도 덕분에 나도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힘내세요. 차차 좋아지실 거예요ㅜㅜㅜ
퇴원 당일, 나의 급한 성격 +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허락도 받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고, 짐부터 정리하고 부산을 떨던 모습에 간호사 선생님들도 당황하셨겠지만, 죄송해요. 저 너무 집에 가고 싶어요... 원무과에서 퇴원 수속하기도 전에 APP으로 중간 정산 때려버린 나란 사람 정말 대단함...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낮잠 한번 자 주고, 돌아온 나의 어린이를 안아주고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하지만 어린이를 향한 마음은 1시간이 최대였던 것이다. 아이의 반가운 조잘거림은 나를 다시금 병원에 가고 싶단 마음을 들게 했으니...
퇴원 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쉬어 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돌이켜 보니 17년도 출산을 하고 난 이후에 처음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 본 적이 없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는 터라, 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 잘 쉬었고, 너무 잘 잤다. 앞으로의 일상도 조금 더 여유 있고 느긋한 삶이 되길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하늘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옆 자리 환우분 때문에 잠도 안 오고, 집에 갈 생각에 뒤척거리다 보니 자정이 다 되어갔는데 역시나 서울 시내 한복판의 밤하늘에서 유성은 만무하고 별도 보이지 않지. 하지만 이 1주일의 경험이 내 삶의 마지막이 되길 바라며, (물론 재건 수술로 다시 입원은 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