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복귀는 실패했다.

나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by 럭키쥬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본 나의 1년 검진 일기는 특별함이 없었다. 지난가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사이에 나에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분하고, 너무 화나고, 너무 속상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더욱더 깊은 저 밑바닥으로 끌려갔다.


기나긴 육아휴직(육아휴직이라고 쓰지만 실제는 질병휴직이 되어버린)을 2년간 보내며, 이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작년 가을은 출근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다시 건강해졌고, 운동을 열심히 했으며, 먹지 말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최대한 지켜가며,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았다. 항암을 하지 않고 항호르몬제 치료만 하고 있었기에 내가 암환자라는 건 주변인도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전보다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가족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초등 저학년을 함께 있어주었다는 그 뿌듯함도 나름 있었다.


따스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마음가짐을 하던 찰나. 재발이었다. 전절제를 했지만 피부 밑에 남아있는 작디작은 세포에 암이 숨어있었고, 항호르몬제를 기어코 이겨내고 살아났다. 결국 항호르몬제 치료는 실패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작은 낭종일 거라 생각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결국 재발이라는 말을 들었고. 급하게 본원 진료일정이 시작되었다. 1년 6개월 검진을 앞두고 재발이었다.


첫 확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2년 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암 진단의 상황은 오히려 지금에 비하면 덤덤했다. 아무것도 몰랐고,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멘탈이 나가있었던 걸까. 눈물은 났지만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긍정적으로 잘 이겨내면 할 수 있을 거야. 뭐 이런 느낌. 그런데 재발이라는 말은 그 감정의 진폭이 달랐다.


슬픔이라는 감정선은 첫 진단 때 보다 적었다. 가장 치솟는 감정은 불쾌, 분노, 화, 억울함, 서러움.. 뭐 이런 것들이다. 왜지? 온코검사 결과도 좋아서 항암도 패스했는데, 재발이라니. 왜지? 가슴 조직을 다 버렸는데, 왜지? 남들은 재발 없이 20년도 살고 있다는데, 1년 만에 왜지? 난 왜 이렇게 빠르게 재발한 거지?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 채 서러움과 억울함이 가득한 눈물만 뚝뚝 떨어진다. 밥을 먹다가도, 양치질을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눈물이 제어가 안된다.


본원에서의 진료는 빠르게 잡혔고, 예상보다 일찍 주치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서글펐다. 모든 검사는 다시 초진 때처럼 끝없는 퀘스트의 연속이었다. 다른 장기의 전이 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 재발이기에 외과 수술로만 끝나지 않고 모든 치료과정이 총동원되는 스케줄. 수술, 항암, 방사까지. 올 한 해는 그렇게 병원을 다니다 끝나겠구나. 그래도 좋으니 부디, 여기서 더 나쁜 소식은 전해지지 않길.


매우 씩씩한 척, 굉장히 잘 이겨내는 척 하지만 사실 나도 너무 무섭고 두렵다. 만약 내가 4기가 된다면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자연스러운 노환이 아닌, 암으로 죽겠구나. 전이가 맞다는 결과를 듣게 된다면 매우 심각하게 무너질 것 같은데, 내가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너무 두렵다. 3번째 수술을 앞두고, 언제까지 괜찮은 척 버텨낼 수 있을까. 오늘의 글은 감정 쓰레기로 가득하다. 잠식된 분노와 노여움을 이렇게라도 분출하지 않는다면 우울의 암흑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 방법이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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