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과 청심환

by 김이준

내가 ‘청심환’ 이란 것을 알게 되었던 건 9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대입 면접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고3에게 대입은 굉장히 큰 이슈였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눈 앞에 두고 나와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면접을 잘 볼 수 있는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별 예상 질문을 뽑아 모의 면접도 보고, 선생님과 함께 수정한 답변을 달달 외우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쇼 미 더 머니에 나오는 래퍼들도 무대만 서면 긴장해서 가사를 절지 않던가,


‘나도 그것처럼 긴장해서 말을 더듬으면 어떡하지? 말이 헛나오면 어떡하지?

혹 열심히 외운 답변을 까먹기라도 한다면…’


여러가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다보니 어느새 답변을 외우는 일은 뒷전이 되어있었고,

면접 당일 긴장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때, 2년 터울의 언니가 있는 친구가 얘기했다.


“우리 언니는 청심환 먹었다던데?”


청심환. 처음 들어보는 약 이름이었다. 약국에 가면 구할 수 있다길래 약국에 가서 청심환 하나를 달라했더니 약사 선생님께서 원래 대입이나 회사 면접 등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이 많이들 사간다고 하셨고,

동그란 환과, 마시는 것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시길래 아무래도 좀 더 먹기 쉬운 마시는 청심환으로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면접 당일, 미리 사둔 청심환을 마시고 나는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정말 청심환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평소 긴장을 자주하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떨지 않고,

준비했던 답변들을 충분히 하고 나올 수 있었다.

발표 수업 시간에도 벌벌 떨던 사람이었는데, 청심환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내게 있어 청심환은 일종의 무기가 되었다.

대학 시절 PPT 발표 시간에도, 첫 회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에도 청심환 덕분에

나는 어느 자리에서든지 준비했던 것들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 면접을 보러 가게 됐을 때에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마시는 청심환을 준비했다.

청심환 때문이었는지, 두 번째 면접이라 그런거였는지는 몰라도

첫 회사 때보다는 조금 더 수월한 느낌이었다. 대표님과 오고 가는 대화의 분위기도 좋았다.

여느 때처럼 준비한 답변들을 모두 얘기했고, 마무리 단계에서 대표님은 전 회사에서 받은 연봉을

여쭤보셨다.


“기획 피디 직무는 처음이니까 이 전에 받았던 거 고려해서 연봉은 이 정도가 어때요?”


당장은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터라 연봉이야 다니면서 차차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긍정의

답변을 드렸고, 나는 당연히 ‘그럼 생각해보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연락 줄게요.’ 라는 말씀을 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럼, 1월 1일 새해 지나고 1월 2일부터 출근합시다.”


예상을 빗나가는 대표님의 말씀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당일에 합격 발표를 주는 회사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었는데…

혹 이상한 회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순간 올라왔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이상한 회사라고 해도, 집에 가서 알아보면 되니까 일단은 알겠다고 하자.’


알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집에 가서 알아보니 회사는 이상한 곳은 아니었다.

하마터면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한 티를 내거나, 실수를 했을 수도 있었는데

이성적으로 행동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몇 주가 지나고, 사수 피디님은 떨지 않고 면접을 보는 나의 모습이 신기했다고 하셨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 긴장을 하기에,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긴장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청심환을 먹으며 긴장을 감춰왔던 내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혹 내가 긴장을 해서 답변을 까먹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사람들은 너그러이 기다려주었을 텐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그동안 청심환을 먹어 왔을까.

심지어 청심환을 먹는다고 해서 긴장이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당황스러운 순간에는 여전히 같은 당혹감을 느꼈고, 그 순간을 대비해 또 다른 약을 찾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청심환을 그만 먹기로 했다.

그 대신, 자연스러운 감정에 익숙해지고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 힘을 길러내기로 했다.

긴장과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나를 온전히 노출 시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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