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망한다 - 17 사법 권력 - 1

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by 나팔수

한국은 망한다 - 17 사법 권력 - 1

사법은 누구의 편인가


제9장

사법은 누구의 편인가 – 법치의 탈을 쓴 권력의 사냥개


"정의의 저울이 기울면, 법은 흉기가 된다. “

사법은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그 저울이 권력과 자본 쪽으로 기울 때, 법은 보호막이 아니라 흉기가 된다. 법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불의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이 장은 사법이 어떻게 권력의 편에 서서 국민을 외면하는지를 고발한다.


제1절 검찰공화국 – 권력의 하수인이 된 수사기관


한국의 검찰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기관이다. 이 두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은, 권력 감시와 정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이 무기는 국민을 향하기보다, 권력을 지키고 적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쓰여 왔다. 이 때문에 ‘검찰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굳어졌다.


사례 1 – 정권의 방패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폭발했을 때, 검찰은 초기에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미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핵심 증거였던 태블릿 PC 확보와 수사 착수도 언론의 연속 보도 이후에야 이뤄졌다. 정권 핵심부가 연루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국민이 아닌 권력의 눈치를 살폈다.


사례 2 – 정치 보복 수사

2020년 이후,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대규모 수사가 이어졌다. 수사의 착수 시점, 대상, 속도 모두가 정치 일정과 절묘하게 맞물려 있었고,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검찰이 스스로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전직 검사장은 “정권이 바뀌면 숙청하듯 수사하는 것이 검찰의 관행이 되었다”고 증언했다.


한국 검찰이 이렇게 정치권력에 종속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주요 보직 역시 청와대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승진과 인사권이 권력에 달려 있으니, 검찰은 ‘정권의 의중’을 읽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사건 처리의 기준이 법과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가 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권력 남용을 차단한다. 예컨대 미국은 FBI가 수사권을, 연방검찰이 기소권을 갖지만, 서로 다른 기관으로 분리되어 상호 견제가 가능하다. 한국처럼 한 기관이 두 권한을 독점하는 구조는 OECD 국가 중 유일하다.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에서 벗어나려면, 권한의 구조적 분산이 필수적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인사권에서 대통령의 손을 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며, 국민은 법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재판받는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제2절 국민은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 문장은 법전 속에만 존재하는 문구일 뿐, 법정 안에서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법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농담이 아니라 냉정한 사실로 작동해 왔다.


사례 1 – 재벌과 권력층의 면죄부

대기업 총수가 회삿돈 수백억 원을 횡령하거나 배임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5년 한 대기업 회장은 500억 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유로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한 시민은 “재벌은 경제를 살리고, 서민은 감옥을 채운다”는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사례 2 – 서민과 약자에게 가혹한 잣대

반면, 수십만 원의 생계형 절도로도 실형을 선고받는 이들이 있다. 2021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노인은 편의점에서 6만 원어치 물품을 훔쳤다가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는 “동종 전과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 ‘전과’ 역시 굶주림 속에서 벌어진 생계형 절도였다.

법은 사정을 듣지 않았고, 절차는 기계처럼 돌아갔다.


법의 불평등은 단순한 판사의 성향 문제가 아니다. 강자는 비싼 변호인단과 로펌을 고용해 재판 전략을 세우고, 서류와 증거를 세밀히 다듬는다. 반면, 약자는 국선변호를 받지만, 변호인의 시간과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 차이가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법은 형식적으로 평등하지만,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이 그 평등을 무너뜨린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공공변호인 제도를 강화해 경제적 약자도 수준 높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예컨대 캐나다는 형사사건 피고인의 소득이 기준 이하일 경우, 국가가 전문 변호인의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한국은 국선변호제도가 있으나, 수임료가 낮고 사건 수임 건수가 많아 ‘충분한 변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은 강자의 방패가 아니라, 약자의 최후 보호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법은 그 역할을 저버렸다. 법치주의가 실현되려면,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동등한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의 평등 조항은 앞으로도 종이 위의 문장에 불과할 것이다.


제3절 법정은 정의의 전당이 아니다


법정은 흔히 ‘정의가 최종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으로 불린다. 국민은 판사와 검사가 법률과 증거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 속 법정은 종종 정의를 구현하는 무대가 아니라, 권력과 이익의 계산이 오가는 ‘거래의 장’으로 변질된다.


사례 1 –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판결

2018년,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대규모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았다.

혐의 입증을 뒷받침할 증거와 증언이 있었음에도,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직후,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는 익명으로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재판부 내부에 있었다”고 털어놨다.

판결문에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공기’가 법정의 공정성을 뒤흔든 것이다.


사례 2 – 경제 논리로 포장된 불공정

재벌 총수들의 횡령과 배임 사건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명분으로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 계층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법정이 정의가 아닌 경제 논리를 대변하는 모순적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날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이라기보다, 법률 전문가들이 전략을 겨루는 게임장이 되었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길 수 있는 사건’으로만 접근하는 관행, 재판에서 유리한 증거를 골라 제시하는 변론 방식이 그것이다.

그 결과, 판결은 ‘누가 더 정의로운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전략적으로 유리한가’에 따라 좌우된다.


독일과 프랑스는 법관이 수사 과정에도 깊이 관여하여 재판 전부터 사건의 실체를 심층적으로 파악한다. 판사가 사건의 전모를 먼저 이해한 뒤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변호사의 전략보다 사실관계와 증거의 진실성이 더 중시된다. 반면, 한국의 법정은 증거 제출과 변론 과정이 지나치게 ‘경쟁적’이어서 진실보다 기술이 우선한다.


법정이 다시 정의의 전당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압력으로부터 재판부를 독립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판사의 인사권과 평가권을 외부 권력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판결 과정과 논리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법정은 권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무대가 아니라, 오직 정의와 법률만이 작동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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