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한국은 망한다 - 21 불평등 공화국 1
경제는 성장했으나 국민은 가난해졌다
제10장 경제는 성장했으나 국민은 가난해졌다 – 탐욕이 만든 불평등 공화국
"성장은 부를 낳았지만, 그 부는 국민 것이 아니었다. “
성장은 분명 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부는 극소수가 독점했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 속에 머물렀다. 불평등은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 이 장은 한국 경제의 성장이 어떻게 국민 다수에게 돌아가지 않았는지를 분석한다.
제1절 경제성장인가, 생존의 양극화인가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부러워한 ‘압축성장’의 아이콘이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불과 수십 년 만에 OECD 가입국이 되었고, 2020년대 들어서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삶 사이에는 깊은 균열이 존재한다. 국제무대에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 선진국의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하루살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3만 6천 달러, 세계 30위권이다. 하지만 중위소득 대비 하위 20% 가구의 소득 비율을 보면,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 즉, 상위층이 경제 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화려하게 포장되지만, 그것이 모든 국민의 ‘생활 수준’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한때 유행했던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상위층이 부유해지면 그 혜택이 하위층으로 흘러간다는 논리—는 한국에서는 사실상 실패로 판명 났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성장 모델은 더 노골적인 양극화 구조를 택했다. 대기업 중심 수출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혔지만, 내수와 고용을 담당하던 중소기업·자영업 부문은 구조조정과 폐업의 연속이었다. 골목 상권은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에 잠식됐고, 지방 경제는 서울과 수도권에 종속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성장은 ‘국가 단위’로만 존재하는 허상일 뿐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가구의 실질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0%에 가깝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과 주거비 폭등, 교육비 부담이 소득 증가를 완전히 상쇄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더 많이 벌어도 더 가난해지고, 더 오래 일해도 더 불안해졌다.
국제 비교는 이 괴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2022년 기준 스웨덴, 덴마크, 독일은 비슷한 GDP 수준에서도 공공의료, 무상교육, 안정적 연금제도를 통해 국민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같은 GDP 수준에서도 ‘개인부담률’이 과도하게 높다.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가 국민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경제성장은 오히려 ‘살기 힘든 나라’라는 역설적 평가를 낳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률은 아직도 국가 자존심의 핵심 지표로 여겨진다.
그러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말했듯, “국가의 부는 국민의 삶의 질로 측정되어야 한다.”
성장률이 높아도 국민 다수가 불안과 결핍 속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왜곡된 번영’일 뿐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지금, 생존의 양극화라는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제2절 재벌 중심 경제 – 성장의 독점화
한국의 경제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소수의 재벌 그룹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 현대, SK, LG—이 네댓 개 그룹의 매출만으로 국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포장되지만, 그 뒷면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숨어 있다.
경제 성과와 권력이 극단적으로 집중되면서,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로 흘러가지 않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재벌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그 경쟁력은 하청·납품 구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만 개의 중소기업이 재벌의 ‘가격 통제’ 아래 놓이고, 납품 단가는 수년째 제자리거나 오히려 하락한다. 중소기업은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깎고, 기술개발 투자를 미루며, 결과적으로 미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성장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이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이라도 재벌이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면 독자 생존이 어렵다.
많은 스타트업이 초기 성공 후 재벌 계열사에 인수되거나, 유통·마케팅의 벽에 막혀 소멸한다. ‘유니콘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 중심 구조는 ‘창조적 파괴’ 대신 ‘창조적 흡수’로 작동한다.
새로운 기업과 기술은 혁신을 일으키기보다 재벌의 포트폴리오에 흡수되어 독립성을 잃고, 결국 시장은 더욱 단조로워진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 문제는 더 뚜렷하다.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수많은 강소기업이 지역 기반에서 자생력을 키우는 구조—는 재벌형 대기업이 장악하지 않는 시장 공간에서 가능했다.
일본 역시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세계적 틈새 강자를 다수 배출했지만, 한국은 재벌의 과점 구조로 인해 이러한 기업이 뿌리내리기 힘들다. 이런 경제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 중소기업의 몰락은 고용 기반을 약화시키고, 산업 전반의 혁신 속도를 늦춘다. 재벌 중심의 독점 성장은 국가 전체를 ‘4~5개의 거대 나무’만 남은 숲으로 만든다. 숲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그 경제는 한 번의 폭풍에도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3절 중산층 붕괴와 자산 불평등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인의 월급으로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며,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은 오래된 사진처럼 빛이 바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는 국민은 40% 이하로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중 상당수가 ‘불안한 중산층’이라는 점이다.
언제든 하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중산층 붕괴의 핵심 원인은 자산 불평등이며, 그 자산 격차를 폭발적으로 키운 것이 바로 부동산 가격의 기형적 상승이다. 한국에서 주택은 단순한 거주 수단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유력한 ‘자산 증식 도구’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 증식 기회가 부동산을 이미 보유한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시세 차익을 통해 자산을 불리고, 무주택자는 같은 기간 전·월세 인상으로 저축 여력을 상실한다.
2024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약 12억 원, 전국 평균 가구 소득의 1518배 수준이다. 20년 전만 해도 가구 소득 56 배면 가능했던 주택 구입이 이제는 평생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일상어가 되었고, 이는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졌다.
2023년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5%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부동산 불평등의 부작용은 단순히 개인 자산의 격차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세대 간 불평등 심화다. 부모로부터 주택 자산을 상속받은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의 출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수저 계급론’이 사회의 냉소적 자화상으로 굳어졌다.
둘째, 지역 불평등 고착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 격차는 경제·교육·문화 자원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며,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했다.
셋째, 경제 생태계 왜곡이다.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에 묶이면서, 혁신 산업과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본 공급이 줄어들었다.
이 모든 현상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낳았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했고, 세금과 규제의 변화는 투기를 억제하기보다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집값은 한 번 오른 뒤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굳어졌고, 이는 실수요자가 아니라 투기 세력을 위한 시장을 만들었다.
국제 비교를 보면, 싱가포르·뉴질랜드 등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외국인 거래 제한, 다주택자 중과세, 공공주택 확대를 지속적으로 시행해 왔다. 반면 한국은 단기 규제와 완화의 반복 속에 정책 일관성을 잃었고, 그 결과 부동산은 사회 불평등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었다.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부동산 불평등은 그 조건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집이 자산 증식의 상징이 되는 순간, 주거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 되었고, 중산층은 더 이상 ‘안정판’이 아니라 불안정의 중간 지점으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