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한국은 망한다 - 22 불평등 공화국 2
경제는 성장했으나 국민은 가난해졌다
제10장
제4절 청년세대의 벗어날 수 없는 절망 – ‘헬조선’ 담론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기회의 상징’이 아니다. 1980~90년대 청년에게 주어진 것은 ‘성장하는 경제’와 ‘넓어지는 사다리’였다면, 오늘의 청년에게 주어진 것은 ‘막힌 사다리’와 ‘좁아진 문’이다.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더 이상 도전의 무대가 아니라 생존 경쟁의 전장이다.
2024년 청년(15~29세) 공식 실업률은 약 8%지만,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는다. 수치에는 잡히지 않는 ‘질 낮은 일자리’가 청년층을 삼킨다. 계약기간이 6개월 미만인 단기직,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 혹은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허드렛일’이 청년의 시간을 갉아먹는다. 취업 준비 기간은 평균 3년 이상, 안정된 직장을 잡는 데까지는 20대 후반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청년 절망의 가장 큰 구조적 원인 중 하나가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주거비는 청년의 독립과 결혼, 출산 계획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벽이다. 서울의 원룸 전세 평균 보증금은 1억 원을 넘어섰고, 월세도 생활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지 않는 한, 내 집 마련은 평생의 숙제가 된다.
집을 소유한 동년배와 그렇지 못한 동년배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만으로는 청년 절망의 뿌리를 다 설명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득권층이 사회의 모든 자원—경제적 부, 정치권력, 사회적 영향력, 네트워크—를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낙수효과’라는 말이 있었다.
상위층이 부유해지면 그 혜택이 하위층으로 흘러간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에서는 낙수효과는커녕, 물 한 방울조차 흘러내리지 않는다. 모든 자원이 상층부에서 순환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부채’와 ‘위험’뿐이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바로 이 구조적 병폐를 가리킨다. 단순히 기회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회의 원천이 되는 자원이 상층부에서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재벌과 정치권, 고위 관료 출신 네트워크, 사교육 시장의 상층 구조가 서로 얽혀 자원을 돌려가며 사용한다. 청년 세대는 그 바깥에서 ‘입장권’조차 얻지 못한 채 기회를 기다리다, 결국 체념하거나 해외로 떠난다. 이 격차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재생산의 불능 상태를 의미한다. 새로운 세대가 기존 세대를 대체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이 영구적으로 권력을 세습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굳어지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청년 세대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잔인한 조롱에 가깝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경제 침체 속에서 청년 세대의 무기력과 결혼 기피, 출산율 하락을 불러왔듯, 한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이를 ‘유동하는 근대’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어느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장기 계획이 불가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의 절망은 단순한 불안정이 아니라, 상층부의 완전한 독점이라는 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청년이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청년의 절망은 곧 국가의 절망이 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청년이 맞는 첫 번째 장벽이 ‘월세 계약서’이고, 두 번째 장벽이 ‘비정규직 계약서’, 세 번째 장벽이 ‘기득권 독점의 보이지 않는 성벽’이라면, 그 사회의 성장 신화는 이미 끝난 것이다.
제5절 노인 빈곤 – 노동의 끝은 구걸이다
한국의 거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노인의 노동’으로 가득하다. 폐지를 줍는 노인, 지하철에서 껌을 파는 노인, 마트에서 카트를 정리하는 노인. 이들은 은퇴 후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
202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0%를 넘어, 조사 대상 38개국 중 압도적인 1위다. OECD 평균(13%)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노인 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노후 준비 부족이 아니다. 그 뿌리는 자원 배분의 불평등에 있다. 경제성장기의 과실은 특정 계층과 산업에 집중되었고, 그 이익이 사회 전체로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복지 제도는 부실했고, 세금 제도는 역진적이었으며, 노동시장은 조기 퇴직과 불안정 고용이 일반화되었다. 결국 국민 다수가 평생 노동에도 불구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 불평등이 세대를 가로질러 지속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과 네트워크까지 독점했다. 그 결과 국가의 예산과 정책, 법과 제도가 ‘누가 더 오래, 더 많이 가질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노인 세대가 성장기에 창출한 부와 자원 상당수는 상층부에 축적된 채로 고착되었고, 은퇴 후 그 자원이 노인들의 생활 안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선진국의 사례는 대조적이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는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이 25% 이상이며, 특히 노후 소득 보장 비중이 높다. 국민연금이 최소 생활비의 70~80%를 보장하고, 공공의료가 노인의 의료비 부담을 거의 전액 흡수한다. 반면 한국은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12% 수준에 불과하며, 노후 소득 대체율도 40% 남짓이다.
그마저도 비정규직·영세 자영업자 출신은 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평균 수령액이 월 50만 원대에 그친다.
노인 빈곤은 단순한 세대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자원 배분이 왜곡된 결과다.
성장기 국가가 선택한 ‘성장 우선·복지 후순위’ 전략은 기득권층의 자원 축적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대가로 다수의 국민은 노후를 빈곤 속에 맞게 되었다.
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사회에서, 세월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미래 세대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오늘의 청년이 노인이 될 즈음, 기득권층의 독점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빈곤 노인의 행렬은 더 길어질 것이다. ‘노인의 노동’이 일상이 된 사회는 이미 실패한 사회다. 노동의 끝은 휴식이어야지, 구걸이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