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한국은 망한다 - 23 불평등 공화국 3
경제는 성장했으나 국민은 가난해졌다
제10장
제6절 경제는 살아있지만 국민은 죽어간다
한국 경제의 ‘거시지표’는 여전히 건강하다. GDP 성장률, 수출 실적, 외환보유액, 주가지수—모두 선진국 수준의 수치를 기록한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경제 대국’으로 불리고, 정부는 세계 경제 포럼과 무역 협상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통계 속 활력은 골목과 가정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의 일상은 성장의 온기를 체감하지 못한 채, 오히려 더 차갑고 팍팍해졌다.
2023년 가계 실질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0%대, 물가 상승률은 3% 이상이었다.
경제는 살아있는데, 국민의 가계는 숨을 헐떡인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주거비, 교육비가 빠르게 오르면서, 소득이 증가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심지어 소득 하위 40% 가구의 실질소득은 5년째 제자리이거나 감소 추세다. ‘경제 호황’이라는 말은 상위 10%에게만 해당되는 전언이 되어버렸다. 이 괴리는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 배분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경제 성장으로 생긴 이익은 재벌과 금융권, 그리고 부동산 자산가 계층으로 집중된다. 기업 이익은 배당금과 내부 유보금으로 쌓이고, 부동산 시세차익은 자산가의 장부에만 기록된다.
생산과 성장의 열매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고, 상층부에서만 순환한다.
결과적으로 국민 다수는 ‘성장’이라는 단어와 아무 인연 없이 살아간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은 국민 생활 악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때 골목상권을 지키던 소규모 식당, 카페, 문구점, 편의점조차 이제는 버티기 어렵다. 임대료와 인건비는 치솟고, 원자재 가격은 불안정하며,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확장과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세로 매출은 급감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자영업자 수는 창업자 수를 넘어섰고, 하루 평균 3,000곳 이상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위기를 간신히 버텼지만, 이후 경기침체와 비용 상승을 견디지 못해 폐업을 선택했다.
폐업은 단순히 ‘한 사업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가게를 접은 이들은 대출 부채를 안고,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 위기에 내몰린다. 골목이 텅 비면 지역 경제는 더 침체되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 편의마저 악화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곧바로 지역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독점 구조는 이러한 현상을 완화하기는커녕 악화시킨다. 정부 정책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이해를 우선시하고, 자영업자 보호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문다. ‘공정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본력 있는 사업자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고착된다.
국민의 삶이 무너지는 현장은 통계가 아니라 거리에서 더 잘 보인다. 퇴근길에 들르는 편의점에서, 장바구니 속 물가가 한 달 전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전기세 고지서를 보고 한숨짓는 노부부, 월세 인상 통보에 잠 못 이루는 청년,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미루는 환자들—그리고 이제는 문을 닫아버린 단골 가게 앞을 지나며 느끼는 상실감. 이것이 ‘경제 호황’의 실체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경제의 목표는 단순한 성장률이 아니라 인간의 역량(capabilities)을 확장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경제는 역량을 확장하기는커녕, 다수의 국민이 스스로를 축소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경제는 살아있지만, 국민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7절 성장의 허상 –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한국 사회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절대선(absolute good)으로 여겨졌다. 성장률이 오르면 국가는 성공했고, 떨어지면 위기라고 했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그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수치로 기록된 성장률이 국민 다수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착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재벌과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국가의 산업정책, 금융지원, 무역협상 모두가 상위 기업 집단의 수익 극대화를 지향했다. 그 과정에서 상위 10% 계층은 부와 권력을 동시에 확장했지만, 나머지 국민은 소득·자산·기회의 면에서 점점 뒤로 밀려났다.
‘국익’이라는 단어가 실상은 ‘상층부의 이익’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이 구조에서 ‘성장’은 기득권의 자산가치와 배당금을 불리는 도구로 작동했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미미했다. 법인세 인하와 각종 규제 완화는 투자 확대보다 배당 확대와 내부 유보금 증가로 이어졌다. 그 결과 성장의 과실은 국민 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상층부 내부에서만 순환하는 폐쇄경제가 형성됐다.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성장의 통계에서 ‘숫자’로만 존재했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더 길어진 노동시간, 불안정한 고용, 줄어든 실질소득뿐이었다. 경제지표가 오를 때마다 언론은 ‘호황’이라 불렀지만, 국민 다수의 체감 경기는 정반대였다.
세계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성장은 반드시 사회 전체에 혜택을 주지 않는다.
분배 없는 성장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성장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현실은 이 경고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성장의 허상’은 정치권의 언어에서도 확인된다. 선거철마다 ‘경제 살리기’가 구호로 등장하지만, 그 ‘경제’에는 국민 생활의 안정이나 복지 향상보다 투자·수출·기업 이익이 우선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 속에서 성장률은 잠시 오를 수 있지만, 사회적 불만과 불평등은 장기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경제 성장은 GDP 상승률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삶의 질과 안전망이 얼마나 개선되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성장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성장의 허상은 결국 사회 전체를 허물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신화이다.
제8절 무너진 노동 – 인간의 가치는 어디로 갔는가
노동은 한때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땀 흘린 만큼의 보상, 노력에 걸맞은 대우는 사회가 구성원에게 약속한 최소한의 계약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노동은 더 이상 존엄을 보장하지 않는다. 일은 존재하지만, 안정과 보상은 사라졌다.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2023년 기준 약 1.6배, 복리후생과 고용 안정성까지 고려하면 그 차이는 훨씬 크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5%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청년층과 여성, 고령층에서 그 비율은 더 높다. 비정규직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고, 경력 개발 기회도 제한된다. 계약 기간이 6개월, 심지어 3개월에 불과한 경우도 흔하다.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양산했다. 배달기사, 대리운전, 택배, 프리랜서 IT 개발자까지—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기업에 종속된 하청 노동자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수입은 경기·날씨·플랫폼 정책 변화에 따라 급격히 요동친다. 노동 시간은 길지만, 안정성은 바닥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득권 중심의 경제 체계는 노동을 가치 창출의 주체가 아니라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취급한다. 기업은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정부는 고용의 질보다 단기적인 고용률 수치에 집착한다. 노동시장은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평가된다.
국제 비교는 한국 노동의 열악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은 연 1,700시간 대지만, 한국은 1,900시간을 웃돈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 수준과 삶의 질은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는 노동의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존엄이 동시에 훼손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성과 압박은 주체를 스스로 착취하게 만든다”고 했다. 한국 노동자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혹은 다음 계약을 위해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끝에는 성취감이 아니라 탈진과 소진만이 남는다.
무너진 노동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신뢰를 붕괴시킨다. 안정적인 노동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미래 계획이 불가능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 청년층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회를 독점한 상층부와 경쟁하다 지쳐 떨어져 나가고, 중·장년층은 생존을 위해 존엄을 포기한다. 노동이 존중받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추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