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한국은 망한다 - 24 불평등 공화국 4
경제는 성장했으나 국민은 가난해졌다
제10장
제9절 부동산 공화국 – 집은 거주가 아닌 투기 수단
집은 원래 거주를 위한 공간이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집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산 증식의 수단, 더 정확히는 투기 대상이 되었다. 주거의 본질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부동산 가격’이라는 숫자와 그것을 추격하는 사람들의 경쟁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부동산이 한국 경제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가계 자산의 약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주택 가격 상승이 ‘부의 사다리’로 작동하는 한, 사람들은 자금을 주식, 벤처, 신산업 같은 생산적 투자로 옮기지 않는다. 그 결과 자본의 유동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신산업·창업·기술혁신으로 흘러가야 할 돈이 벽돌과 콘크리트 속에 갇힌다.
정부는 최근 주식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려는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세제 혜택, 투자 활성화 방안, 공모펀드 확대 등 여러 시도가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부동산이 여전히 ‘확실한 수익’과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장기간의 가격 상승을 경험하면서, 투자심리를 완전히 장악했다. 주식은 위험하지만 집값은 오른다는 믿음은 이미 세대 전체의 금융 습관으로 굳어졌다. 이 구조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시세차익과 임대수익을 동시에 누리고, 무주택자는 주거비 상승으로 자산 형성의 기회를 잃는다. 소득이 같더라도 자산 규모가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진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가 이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민감한 사안이 되었지만, 정작 가격을 ‘실질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책’은 내놓기 어렵다.
강력한 규제는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다주택자·투기 세력의 반발을 불러오고, 완화 정책은 곧바로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장기적·근본적 대책 대신 단기적 미봉책을 반복하며, 시장은 그 틈새를 이용해 더 불안정하게 요동친다. 결국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자산과 자원의 편중이다.
한국 경제의 피처럼 흘러야 할 자금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생산적 투자와 산업 다변화는 가로막히고, 불평등은 세대와 계층을 가로질러 고착된다. 정치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정된 주거는 국민의 권리이자, 경제 유동성 회복과 불평등 해소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 편중 문제는 세계 주요국에서도 경고등이 켜진 현상과 맞닿아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 시기에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면서, 전국 토지 자산 가치는 미국 전체 땅값을 넘어섰다.
그러나 1991년 버블이 붕괴되자 부동산 가격은 20년 넘게 하락했고, 이는 금융기관 부실, 장기 불황, ‘잃어버린 세대’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사례는 부동산에 과도하게 자본이 몰릴 때, 그것이 경제 전체를 장기 침체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 역시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이 아닌 ‘급락’ 시, 금융권과 가계부채, 소비심리가 동시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 원인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와 투기성 금융상품이 결합해, 실수요자의 상환능력을 무시한 채 대출이 남발되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고, 국가 차원의 대규모 구제금융이 투입됐다. 미국의 교훈은 ‘부동산 거품과 금융의 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준다. 한국도 현재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를 넘어선 상황에서, 부동산 의존 구조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위험이 상존한다.
유럽 일부 국가는 부동산 가격 급등을 경험했지만, 한국과는 대응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독일은 임대차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장기 임대계약과 임대료 상한제를 강화했고, 프랑스는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높여 주거용 주택을 투자 수단으로 삼는 것을 억제했다. 싱가포르와 뉴질랜드는 외국인의 주택 매입을 제한하거나 다주택자 취득세를 대폭 인상해, 시장 유동성을 줄이는 대신 가격 안정을 도모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정책 일관성 부족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규제와 완화를 반복했다. 장기적 안목에서 주거 안정과 경제 유동성의 균형을 맞추기보다, 정권별 단기 성과에 맞춘 정책을 남발해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그 결과 부동산은 여전히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처’라는 인식이 고착되었고, 생산적 투자를 위한 자본 이동은 사실상 차단됐다.
세계 각국의 사례는 공통적으로 말한다.
부동산 편중은 단순한 시장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와 사회 안정 전체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점을. 한국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는다면, 불평등과 자본 경직성은 앞으로 더 심화될 뿐이다. 주거의 정상화 없이는 경제의 정상화도 없다.
제10절 자본과 정치의 결탁 – 법 위에 선 돈
법은 모든 국민 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는 자본이 법 위에, 그리고 정치 위에 있다. 거대 자본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불리한 규제는 완화하거나 무력화시킨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 속에서 부와 권력은 서로를 지탱하며, 사회 전체의 규칙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바꾼다.
재벌 총수와 고위 정치인의 만남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정책 방향이 결정되기 전, 기업 로비스트와 정치권 실세가 회동한다. 표면적으로는 ‘경제 활성화’와 ‘투자 확대’라는 명분이 내세워지지만, 실제로는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대기업 중심 지원 정책으로 귀결된다.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법과 제도는 소수의 이해를 반영하는 ‘사적 헌법’이 된다.
재벌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관대한 판결은 이 결탁의 단면이다. 횡령, 배임, 분식회계, 뇌물수수—그 범죄의 규모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반복된다. 중소기업인이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실형을 피하기 어렵지만, 재벌 총수는 ‘경영권 유지’라는 특혜 논리로 법망을 피해 간다. 이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이 결탁 구조는 경제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정치권은 대기업·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을 설계하고, 그 대가로 정치 자금을 받거나 향후 자리를 보장받는다. 반대로 자본은 정치적 지원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는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로 밀려난다.
해외 사례는 이 문제의 보편성과 동시에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슈퍼 PAC’과 대기업 로비는 정치 영향력의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은 최소한 반독점법과 언론의 감시 기능이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어, 기업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정치자금 기부 상한제와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강화해 자본과 정치의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반면 한국은 재벌 구조가 산업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견제 장치가 취약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결국, 자본과 정치의 결탁은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구조적 결함이다. 이 결함을 해소하지 않는 한, 경제 민주화는 구호에 그칠 뿐이며, 법의 권위는 계속 훼손될 것이다. 법 위에 선 돈은 단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장기적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제11절 공정은 사라지고 분노만 남은 사회
공정은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신뢰의 기둥이다. 경제가 불황이어도, 정치가 불안정해도, 사람들은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대우’가 보장된다고 믿는 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둥이 무너지는 순간, 사회 전체는 균열을 넘어 붕괴로 향한다.
오늘의 한국이 바로 그 길목에 서 있다.
공정성의 붕괴는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첫째, 정치권력의 불공정이다.
선거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정책 결정 과정은 특정 집단과 기득권층의 이익에 기울었다. 법과 제도는 ‘모든 국민’이 아니라 ‘연결된 사람’을 위해 작동했다. 고위공직자의 자녀 채용 특혜, 입시 비리, 내부자 정보 거래 사건은 정치와 관료 사회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둘째, 경제 영역의 불공정이다.
‘공정 경쟁’이라는 구호는 존재하지만, 실제 시장은 불공정 거래와 특혜 계약이 판친다. 재벌 계열사는 입찰 없이 사업권을 가져가고, 하청업체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계약서 미발급에 시달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단순한 자본 규모가 아니라, 제도적·관행적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셋째, 사회·문화적 불공정이다.
동일한 노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출발선이 다르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는 고급 사교육과 해외 유학으로 기회를 확장하지만, 서민 가정의 자녀는 빚을 내서 학비를 충당하거나, 아예 교육의 질에서 차별을 받는다. ‘수저 계급론’은 더 이상 풍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냉정한 현실 묘사가 되었다. 이 불공정이 축적되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분노를 낳는다. 분노는 처음에는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적으로 무시당하고, 제도가 불공정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분노는 냉소와 혐오로 변한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와 갈등이 특정 계층·세대·지역을 향해 증폭되는 것은, 결국 분노의 방향을 제도에 돌릴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약자를 향해 분출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공정’이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 프레임으로 소비된다.
어느 집단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를 ‘불공정’이라 부르고, 다른 집단은 동일한 제도를 ‘공정’이라고 주장한다. 공정성은 더 이상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되는 도구가 된다.
사회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시장 논리가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그 사회는 도덕적 토대를 잃는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이미 그 경계선을 넘어섰다.
공정성의 붕괴는 민주주의를 잠식한다.
투표와 참여가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확신으로 바뀌면, 시민은 제도권 정치에 등을 돌린다. 그 공백을 포퓰리즘과 선동 정치가 채운다. 경제 영역에서는 불신이 거래를 지배하고, 계약과 약속의 가치는 하락한다. 문화 영역에서는 성취와 노력의 서사가 힘을 잃고, ‘빽’과 ‘운’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 잡는다.
공정이 사라진 사회에 남는 것은 결국 분노뿐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사회 전체를 부식시키는 산성처럼, 경제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허물며, 공동체의 연대를 파괴한다. 분노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수십 년 동안 축적된 불신과 상실감이 임계선을 넘을 때 터진다. 그 순간, 사회는 더 이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이 이 길에서 돌아서려면, 공정성을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모든 정책·제도의 출발점이자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
공정은 사치가 아니라, 사회 존속의 최소 조건이다. 공정을 잃은 사회에서,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공정이 무너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달려도, 아무리 준비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상에 서 있던 소수이다.
나머지는 뛰다 지쳐 쓰러지거나, 아예 출발선에 서는 것을 포기한다. 한국 사회가 다시 희망을 품으려면,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책무이자, 공동체가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공정이 돌아오는 날, 분노는 비로소 연대로 바뀌고, 냉소는 다시 신뢰로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