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망한다 - 25 복지의 실패

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by 나팔수

한국은 망한다 - 25 복지의 실패

제11장 복지의 실패 – 국가의 품이 사라졌다


"품을 잃은 국가는 국민을 버린다. “

복지는 국가의 품이다.

그 품이 약할수록 국민은 불안과 빈곤 속에 내몰린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자리에 불평등은 심화되고, 공동체는 붕괴된다.

이 장은 복지 실패가 어떻게 국가의 존재 이유마저 흔드는지를 보여준다.


제1절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는 단순히 영토와 법률, 군대와 세금으로 구성된 기계가 아니다.

국가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이유는 국민을 지키고, 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품어주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무역실적, 외교 성과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과 존엄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국가는 그 ‘품’을 잃어가고 있다.

국민을 보호하는 울타리 대신, 그들을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사회안전망은 얇아지고, ‘국민 보호’라는 개념은 정치 구호 속에서만 존재한다.

국가의 품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각자도생의 냉혹한 현실뿐이다.


과거 군주국가가 전쟁과 영토 확장, 통치를 위한 존재였다면, 근대 복지국가는 시민의 삶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국가는 더 이상 품이 넓은 어머니가 아니다.

오히려 무심한 관리자, 아니면 자신의 몫만 챙기는 계급의 도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제2절 복지라는 이름의 허상


한국의 복지 정책은 자주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선거철이 되면 온갖 복지 공약이 쏟아지지만, 정작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도 개선은 뒷전이다.

재난지원금, 선심성 현금 지급, 단발성 혜택은 언론에 화제를 몰고 오지만, 국민의 삶을 구조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한다.


OECD 평균 복지 지출 비율은 GDP의 약 2.025% 이지만, 한국은 1.213% 수준에 머문다. 게다가 그마저도 의료·연금·돌봄 등 핵심 분야보다 단기성 사업과 보조금으로 흩어져 쓰인다.

2022년 기준으로 공공사회복지지출 중 현금성 지원 비중이 42%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단기 지원이나 정치적 이벤트성 사업이었다.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측 가능성’과 ‘보편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복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달라지고, 혜택 대상과 기준이 바뀌며, 예산이 불안정하게 변한다.

그 결과 복지는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운과 시기에 따라 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하는 불안정한 시혜로 전락했다.


정치인은 선거철마다 ‘복지’를 말하지만, 복지는 언제나 계산기 위에서 줄어들고 무너져간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조건은 터무니없이 까다롭고, 장애인 복지예산은 매년 발목을 잡힌다.

노인들은 ‘기초연금’이라 쓰인 쪽지 돈을 손에 쥐고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지만, 그것은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닌 시혜로 포장된 통제의 도구이다.


복지는 국가가 시민에게 베푸는 선물이 아니다.

복지는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이 나라는 늘 재정 부족을 핑계 삼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탓으로 돌린다.

실제로는 부자 감세와 재벌 지원, 고소득층을 위한 구조가 복지를 갉아먹고 있음에도 말이다.


제3절 사라지는 공동체, 떠밀리는 개인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복지의 첫 번째 울타리였다.

마을, 이웃, 가족이 서로를 돕고, 국가가 그 기반 위에 공공복지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산업화, 개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공동체의 울타리는 허물어졌다.


공동체가 무너지자, 개인은 국가의 복지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복지망이 충분히 촘촘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빈틈으로 떨어진다.

노인은 고독사하고, 청년은 빚에 짓눌리며, 장애인은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일본의 사례는 공동체 붕괴와 복지 부재의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3만 명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가족·이웃·국가의 복지망이 모두 느슨해진 결과이다.

한국에서도 1인 가구와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며 같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복지는 공동체의 연대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

청년이 자살하고, 장애인이 단전·단수로 죽어가고, 노인이 폐지를 주우며 생존하는 이 현실은 국가의 실패 그 자체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사회적 세뇌에 불과하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

주거·교육·보육 어느 하나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채 ‘하방 이동’을 체념하는 젊은 세대.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구조에서 밀어내며 침묵한다.


제4절 누군가는 퍼주고, 누군가는 잘라낸다


한국의 복지는 정치 성향과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향적으로 설계된다.

특정 계층에게는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혜택이 집중되고, 다른 계층은 지원이 필요해도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복지 재원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다.

그러나 그 세금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는 정치권의 계산에 따라 달라진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당사자다.

필요한 복지를 받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 앞에서, 정치권은 복지를 ‘권리’가 아니라 ‘시혜’로 다룬다.


복지의 불평등은 단지 지원의 양이 아니라 질과 방식에서 드러난다.

대기업은 세금 감면을 받으며 정부 지원을 받고, 부동산 부자는 공공자금의 수혜자가 된다.

반면, 가난한 사람일수록 복지를 받기 위해 굴욕적 심사와 낙인감을 감내해야 한다.

기득권에게는 무조건적 지원이지만, 서민에게는 증명하라는 명령이다.

국가는 시민 전체의 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는 더 이상 시민을 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지의 실패가 아니라, 존재 이유의 붕괴다.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를 사회 존속의 핵심 장치로 본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25%를 넘고, 의료·교육·돌봄을 무상 또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한다.

높은 세율을 감수하는 대신, 국민은 불안 없이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안전망을 누린다.

독일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안정망을 갖추고 있다.

실업보험, 연금보험, 의료보험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어,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복지가 보장된다.

이 구조는 경기침체나 인구변화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반면 일본은 고령화 속도에 비해 복지 확충이 늦어져, 의료·돌봄 부담이 가계로 전가되고 ‘고독사’와 ‘빈곤 노인’ 문제가 심화되었다.

한국은 일본과 유사한 인구 구조를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지 지출과 제도 설계에서 후진적 모습을 보인다.


제5절 철학적 관점에서 본 복지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복지 구조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복지의 사각지대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마사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capabilities approach)’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국가가 보장해야 할 핵심 역량을 제시했다.

건강, 교육, 사회적 참여, 안전—이 모두가 복지와 직결된다.

복지가 부실하면 국민의 역량은 축소되고, 국가는 잠재력을 스스로 깎아먹게 된다.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홀로 사는 72세 김 모 씨는 기초연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남편 명의의 땅이 서류상 아직 본인 소유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해당 토지는 도로 확장에 편입돼 수익을 낼 수도 없었지만, ‘재산 기준 초과’라는 이유로 복지 지원이 차단됐다.

한 달 40만 원 남짓한 생활비로 월세와 약값, 식비를 감당하던 김 씨는 결국 병원 치료를 미루다 건강을 잃었다.

제도는 있었지만, 그 제도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반면, 덴마크의 한 30대 실직자는 사정이 달랐다.

IT 기업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었지만, 곧바로 실업급여와 직업 재교육 지원을 받았다. 국가가 제공한 6개월간의 직업훈련을 거쳐 다른 분야로 재취업했고, 이 과정에서 생활비와 주거비도 전액 지원됐다.

그에게 국가는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위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등을 받쳐주는 든든한 품이었다.


복지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의 기반이다.

국가의 품이 사라진 자리에 불신과 냉소만이 자라난다.

국민이 “국가는 나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잃으면, 그 사회는 이미 절반이 무너진 것이다.


국가가 품을 되찾는 길은 복지를 다시 ‘권리’로 회복하는 데 있다.

정치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존엄을 기준으로 복지를 설계해야 한다.

복지는 경쟁의 보상이나 시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질 때, 비로소 국가는 품을 되찾고, 국민은 다시 그 품 안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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