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다매의 법정

죄를 싸게 파는 사회

by 나팔수

[논단] 박리다매의 법정 – 죄를 싸게 파는 사회


“박리다매(薄利多賣)”는 원래 상인의 지혜였다. 이익은 적게 남기더라도 많이 팔면 전체 수익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논리가 법정에서 통용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지혜가 아니라 비극이다.

오늘날 한국의 사법 현실은 점점 ‘박리다매식 판결’로 흐르고 있다. 죄는 싸게 팔리고, 정의는 헐값에 거래된다.


죄의 가격이 싸진 나라


최근 5년간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매년 200건 안팎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윤창호법 시행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법원은 여전히 ‘반성문’, ‘유족과의 합의’, ‘초범’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줄이고,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유족은 합의를 거부하고 버틴다 해서 가해자의 형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합의에 응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이 점을 이용하여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실제 통계에서도 음주운전 사망사건의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로 끝난다. 결국, 생명을 앗아간 범죄조차 “사고”로 축소되고, 죄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진다. 심지어 “감옥이 모자라서 일부러 형을 줄인다”는 냉소까지 나온다.


효율이 정의를 잠식하다


문제의 뿌리는 깊다. 사건이 폭증하자 법원은 ‘빨리 처리하는 효율’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사건을 많이, 빠르게 종결시키는 시스템은 마치 법을 공산품처럼 만들어냈다. 형량은 줄고, 판결은 짧아졌다. 이른바 ‘박리(薄利)’의 법정이다. 한편 “합의가 되면 끝”이라는 인식은 ‘다매(多賣)’를 낳았다. 한 건 한 건의 생명이 통계 속 숫자로 처리된다.

그 과정에서 정의는 묻히고, 책임은 흐려진다. 가해자는 뻔뻔해지고,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 다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반복된다.


관용의 반복이 낳는 사회적 피로


법이 관대할수록 사회는 잔혹해진다.

가벼운 형량은 재범의 유인을 키우고, 피해자 가족의 상처는 사회적 냉소로 변한다. “저 정도면 감옥 안 간다”는 계산이 가능해진 순간, 형벌은 더 이상 억지력이 아니라 면죄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박리다매식 사법’이 만들어낸 구조적 악순환이다.


법이 제값을 받아야 사회가 산다


법은 상품이 아니다. 정의는 효율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주운전 사망사건의 집행유예 남발,

폭력과 학대 사건의 경미한 처벌,

그 모든 것이 생명의 가치를 ‘세일 품목’으로 전락시켰다. 이제는 법이 깨어나야 한다. 형량의 높낮이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의 기준이 다시 세워져야 한다. “싸게 판 죄”가 아니라 “제값을 치르는 정의”가 실현될 때, 비로소 사회는 다시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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