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 - 09] 스페인

신과 황금이 만들어낸 제국,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그림자

by 나팔수

[국가연구 - 09] 스페인

신과 황금이 만들어낸 제국,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그림자


1. 관광의 나라, 그러나 한때 세계를 뒤흔든 제국


오늘날의 스페인은 따뜻한 태양과 축구, 플라멩코, 관광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5~17세기에 이르던 그때의 스페인은 전혀 다른 나라였다.

그들은 그 시대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제국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은 신앙과 황금, 탐욕과 폭력이 얽히며 만들어졌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넌 뒤부터

스페인의 역사는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유럽의 서쪽 끝에 있던 나라가 갑자기 지구 반대편까지 손을 뻗는 중심국가가 된 것이다.


2. 십자가와 왕권 ― 분리되지 않은 두 권력


스페인의 깃발은 새로운 대륙 곳곳에 꽂혔고,

그 깃발 옆에는 늘 십자가가 먼저 세워졌다.

스페인 왕권과 가톨릭 교회는 분리된 두 힘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정당화해 주는 한 몸 같은 존재였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곧 신을 위한 정복으로 포장되었다.

신앙의 이름이 붙는 순간 폭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명”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 사명의 속살은 너무나 노골적인 황금이었다.


3. 문명으로 포장된 약탈 ― 아즈텍과 잉카의 붕괴


새로운 대륙에서 만난 아즈텍과 잉카 문명은

유럽에서 온 이방인들이 들고 온 총과 철 갑옷, 말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진열된 약탈이었다.

스페인은 그들의 신전과 궁전, 저장고를 열어

금과 은을 짐짝처럼 배에 실어 날랐다.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에서는

수많은 원주민이 갱도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은이 유럽의 동전이 되고, 상업의 피가 되며

유럽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4. 엔코미엔다 ― 보호라는 이름의 노예제도


그러나 스페인의 지배는 단순한 강탈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엔코미엔다 제도를 만들어

원주민을 ‘보호’하는 대신 노동을 시킨다고 명시했다.

말은 보호였지만, 실제로는

교회가 축복해 준 노예제도와 다를 바 없었다.

노동은 의무였고, 세금은 강제였으며, 개종은 선택이 아니었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착취였기에

가해자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5. 인구 감소 이후 ― 아프리카의 비극이 열리다


시간이 지나 원주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자

스페인은 또 다른 지옥의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에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노예선에 실려 대서양을 건넌 그들은

사탕수수밭과 광산, 농장에서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했다.

그들의 이름은 기록조차 되지 않은 채

바닷속에, 땅 속에 묻혀 사라졌다.


6. 스페인의 자기 확신 ― 이것이 문명화라고?


스페인은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문명을 전파했다고 믿었다.

가톨릭 신앙을 전했고, 스페인어를 남겼으며,

행정과 제도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문명 또한 있었다.

아즈텍의 화려한 건축과 예술,

잉카의 치밀한 도로와 행정 시스템,

마야의 뛰어난 천문학과 문자—

이 모든 것들이 “문명화”라는 이름 아래

야만처럼 규정되고 무너져 내렸다.


7. 문명을 파괴한 자가 문명을 말할 때

문명을 파괴한 자가


자신을 문명의 주체로 선언하는 순간,

역사는 가장 잔혹해진다.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스페인은 결국 서서히 몰락했다.

그러나 제국이 사라졌다고

그 유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지금도 스페인의 흔적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어, 종교, 사회 구조, 경제 체제—

그 모든 것 속에 스페인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8. 제국은 사라졌지만, 질문은 남았다


스페인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억의 무게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신과 황금의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도

과연 문명일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이야말로

스페인을 연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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