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

제국이 위기를 가릴 때 쓰는 오래된 수법

by 나팔수

[논단]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

— 제국이 위기를 가릴 때 쓰는 오래된 수법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명분이 너무 친절할 때, 우리는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 작전을 발표하며 말했다.

잔혹한 독재자를 제거했고,

미국 석유 기업들이 망가진 석유 인프라를 재건해 베네수엘라를 다시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석유.

언제나 편리한 단어다.

설명하기 쉽고, 반박하기 어렵고,

군사 행동을 ‘경제적 합리성’으로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임지에 실린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제프리 소넨펠드의 기고는

이 명분을 정면으로 해체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네수엘라는 석유 때문에 공격당한 것이 아니다.


석유가 이유라면, 이 전쟁은 설명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17%를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실제 생산량은 세계의 1%에 불과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원유의 상당 부분이 중질유이고,

25년 넘게 방치된 인프라를 되살리는 데

천문학적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 세계 석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 공급량이 수요를 하루 385만 배럴이나 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가는 이미 하락했고,

미국의 주요 석유 기업들은 시추를 늘리기는커녕

대규모 구조조정과 투자 축소에 들어갔다.

셰브론, 엑손, 코노코필립스, 할리버튼.

이 기업들 중 어느 누구도

베네수엘라 침공을 환영하거나

투자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석유가 이유라면,

이 전쟁은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지금, 왜 베네수엘라인가


이 질문에서 논의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공격을 발표한 시점,

미국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위기들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

수백만 명의 건강보험 상실,

연준 독립성 논란,

관세 정책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라는 정치적 폭탄.

미성년자 성착취 네트워크와

유력 인사들이 연루된 이 사건은

트럼프 개인에게도,

미국 정치 전체에도 치명적이다.

이때 전쟁은 무엇을 하는가.

전쟁은 시선을 바꾼다.


‘개 흔들기(Wag the Dog)’라는 오래된 공식


미국 정치 담론에서는 외부 갈등을 내부 정치에 활용하는 방식을 ‘개 흔들기(wag the dog)’1)라고 지칭해 왔다.

사소한 꼬리가

더 큰 몸통을 흔드는 상황.

스캔들이 터질 때,

위기가 깊어질 때,

권력은 종종 외부의 위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악기가 동시에 울리면

청중은 어느 소리가 문제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월 오브 사운드’처럼,

정치적 소음을 극대화해

핵심 문제를 묻어버리는 방식이다.


베네수엘라는

이 전략을 쓰기에 너무 익숙한 대상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추악한 미국식 개입’의 역사가 가장 깊은 나라.

그래서 더 위험하다.


이것이 ‘강도로 변한 제국’의 전형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서 논의한 세계 질서의 변화와 다시 만난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공격은

외교도, 안보도, 에너지 정책도 아니다.

정치적 위기를 가리기 위한 군사적 주의 분산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규칙 대신 힘을 쓰고

설득 대신 충격을 던지며

국제 문제를 국내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래서 독일 대통령이 말했듯

세계는 “도적 소굴”이 되어가고,

마크롱이 말했듯

이 행태는 “신식민주의적”이다.

그리고 이런 제국은

동맹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한국이 이 장면을 오해하면 안 되는 이유


이 대목에서 한국은

절대 관전자일 수 없다.

미국의 군사 행동이

경제도, 안보도 아닌

정치적 위기 회피 수단이 되는 세계에서,

고개를 숙이는 외교,

사정하는 태도,

“잘 지내보자”는 말은

아무런 보호막도 되지 않는다.

오늘은 베네수엘라고,

내일은 다른 나라일 뿐이다.

탈미 질서가 논의되는 이유는

미국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미국이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너무 설명적일 때, 우리는 진짜 이유를 봐야 한다


석유는 핑계다.

베네수엘라 공격의 진짜 목적은

유전이 아니라 시선이다.

트럼프의 진짜 승리는

마두로를 축출한 것이 아니라,

엡스타인 파일과

의료·물가·관세 실패 논의를

신문 1면에서 밀어낸 데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오늘날

제국이 위기를 가릴 때 쓰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제국에

무비판적으로 매달리는 국가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지금 세계가 필요한 것은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

이런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제도적 독립,

즉 탈미(脫美)이다.

베네수엘라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장면을 읽어내지 못하는 나라가

다음 장면의 무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성조기를 높이 흔들면서 광화문에 나타나는 한국인들이 걱정이다.


1) 정치에서 국민들이나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특히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1997년 개봉한 'Wag the Dog'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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