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 13– 이탈리아

로마의 그림자와 파시즘의 상처, 그리고 피자와 마피아 사이에서

by 나팔수

국가연구 13– 이탈리아

로마의 그림자와 파시즘의 상처, 그리고 피자와 마피아 사이에서


1. 로마의 영광이 남긴 긴 그림자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우리는 먼저 로마를 생각한다.

원형경기장, 제국, 군단, 황제.

2천 년 전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의 중심부였다는 기억은 여전히 이 나라의 공기에 스며 있다.

비록 오늘의 이탈리아는 G7 국가 중 하나이지만, 정치가 늘 흔들리고 경제가 불안정한 나라라는 평가도 듣는다.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나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가 유난히 드라마틱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교황령 같은 도시국가들의 모자이크였다.

도시마다 자부심이 강했고, 서로 경쟁하며 예술과 문화를 꽃피웠다.

르네상스는 그렇게 태어났고, 세계사의 미가 그곳에서 다시 한번 살아났다.

하지만 정치는 늘 분열되어 있었고,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 남는다.

북부는 산업과 금융이 발달한 ‘유럽형 지역’이라면, 남부는 여전히 실업과 빈곤, 범죄와의 싸움이라는 ‘다른 현실’을 산다.


2. 마피아 ― 국가와 범죄 사이, 또 하나의 그림자


이탈리아를 이야기할 때 마피아를 빼놓을 수 없다.

‘코사 노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시칠리아 마피아는 원래 외부 권력과 억압으로부터 마을과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보호를 빌미로 돈을 뜯고, 정치와 재판을 조종하며, 때로는 국가보다 강한 권력이 되었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는 허구이지만, 그 안에는 이탈리아 현실의 그림자가 깊게 비친다.

권력과 충성, 가족과 배신, 그리고 피의 복수라는 테마는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무너질 때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지금도 남부 시칠리아나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같은 지역에서는

마피아가 경제와 정치에 보이지 않는 손처럼 개입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탈리아 시민사회는 끈질기게 맞서 싸워왔고,

법률가와 기자, 시민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조직범죄와 맞섰다.

그래서 이탈리아 현대사는 범죄와 정의, 부패와 저항이 뒤엉킨 인간적인 서사이기도 하다.


3. 뒤늦게 뛰어든 제국주의, 그리고 폭력의 흔적


그런 이탈리아가 제국주의 시대에 뛰어든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의 ‘맛있는 땅’을 대부분 차지한 뒤였다.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합류한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동북부,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 그리고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택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930년대 무솔리니 치하에서 벌어진 에티오피아 침공이었다.

이탈리아군은 국제법으로 금지된 독가스까지 사용하며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구호 아래,

그들은 또 하나의 식민지 폭력을 세계사에 새겨 넣었다.


4. 무솔리니와 파시즘 ― 제국의 꿈이 만든 광기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듯한 환상이었다.

민족주의, 군사주의, 폭력의 미화, 지도자 숭배.

그 모든 것이 결합되며 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괴물은 결국 히틀러와 손잡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나아갔다.

전쟁이 끝난 뒤, 무솔리니는 민중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그의 시신은 광장에 매달렸고, 제국의 꿈은 그렇게 비참하게 끝났다.

남은 것은 상처와,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뿐이었다.


5. 전후의 이탈리아 ― 혼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전후 이탈리아는 오히려 새로운 길을 택했다.

공업화와 경제 성장으로 북부는 유럽의 산업 심장 중 하나가 되었고,

패션과 디자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가 되었다.

밀라노와 피렌체, 로마와 베네치아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팔고, 삶의 품격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부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고, 정치권은 불안정하다.

정부가 자주 바뀌고,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며, 이민 문제는 또 다른 갈등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언제나 열정과 혼란이 공존하는 나라다.


6. 한국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나라


한국과 이탈리아가 닮았다는 말이 있다.

둘 다 반도 국가이고,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겪었고,

가족 중심 문화와 정서적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확히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상처와 열정을 동시에 품고 살아온 민족의 공감대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7. 제국은 사라져도, 인간의 삶은 남는다


그렇게 보면 이탈리아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나라다.

로마제국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그들은 실패한 제국의 상처를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 덮어왔다.

정치가 흔들려도 오페라는 울려 퍼지고, 경제가 어려워도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 향이 퍼진다.

마피아의 총성이 울리던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식탁을 나눈다.

이탈리아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제국은 사라져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권력은 무너져도, 맛과 예술과 사랑은 남는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여전히 매혹적인 나라다.

아름답고, 위험하고, 인간적이고, 모순적인 —

그 모든 것이 뒤섞여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흘러가는 나라.

그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일지도 모른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2화국가연구 12- 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