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로비 앞에서 무너진 주권의 자세
[논단] 쿠팡이 한국을 협박할 때, 청와대는 왜 미국으로 달려갔나
― 기업의 로비 앞에서 무너진 주권의 자세
쿠팡이 한국 정부를 협박했다.
그것도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 권력을 동원해 한국을 압박했다.
관세를 들먹이고, 국제투자분쟁(ISDS)을 꺼내고, 대통령까지 색깔론으로 몰았다.
문제는 쿠팡의 오만이 아니다. 그런 오만이 가능해진 구조다.
쿠팡이 한국을 협박할 때, 청와대는 왜 미국으로 달려갔나.
기업이 문제를 일으키면 정부는 조사하고 처벌한다.
이건 국가의 기본 기능이다.
개인정보 유출이든, 노동법 위반이든, 불공정 거래든,
국민의 권익이 걸린 문제라면 더 단호해야 한다.
그게 주권국가의 자세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시작부터 비정상이었다.
쿠팡은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말도 없었다.
대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청원서를 넣었다.
한국을 차별 국가로 몰고, 관세 부과까지 요구했다.
이쯤 되면 이건 기업의 ‘해명’이 아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협박장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다.
쿠팡이 발광을 하면 정부는 원칙으로 눌러야 한다.
“법대로 한다. 끝.”
한 줄이면 정리되는 문제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러지 않았다.
총리는 미국으로 갔다.
미국 부통령을 만나고, 한국 방문을 요청하고, “오해가 없도록 관리하자”고 했다.
이 말은 정중해 보이지만, 실상은 주권국가의 언어가 아니다.
국가가 기업 앞에서 몸을 낮추는 순간, 기업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쿠팡은 이제 확신할 것이다.
한국에서 문제가 터지면 미국을 동원하면 된다.
한국 정부는 결국 외교적 부담을 걱정할 것이고,
사법이 아니라 정치의 언어로 사태를 정리하려고 할 것이다.
즉, 로비가 통하는 나라라고 판단할 것이다.
1. ‘법대로’가 아니라 ‘눈치대로’ 움직이는 청와대의 자동반사
청와대가 정말로 겁냈던 것은 쿠팡이 아니다.
청와대가 겁낸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이게 바로 오늘 한국 외교의 병이다.
한국 정부는 위기가 올 때마다 본능적으로 같은 자세를 취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조차
외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순간,
국가의 태도는 ‘원칙’이 아니라 ‘조정’이 된다.
이 사태도 정확히 그 흐름이다.
쿠팡의 문제는 한국 국내법의 문제다.
조사도, 처벌도, 보상도, 재발 방지도
한국 법 시스템 안에서 끝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스스로 이 사건을 미국과의 “오해”라고 부르는 순간,
그건 이미 문제의 무대가 바뀐 것이다.
기업의 불법 의혹이
주권국가의 사법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과의 외교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법은 뒤로 밀리고, 협상과 정치가 앞으로 나온다.
이것이 바로 기업이 가장 좋아하는 구조다.
법의 세계에서는 증거가 남지만,
외교의 세계에서는 말이 남는다.
법에서는 책임이 따르지만,
외교에서는 “관계”가 우선이 된다.
쿠팡은 그 틈을 파고든다.
한쪽 손에는 ‘투자’와 ‘고용’을 들고,
다른 손에는 ‘미국 정부의 눈초리’를 들이민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그 순간
국민을 바라보기보다, 외국의 표정을 먼저 살핀다.
이게 주권국가인가.
아니면 눈치로 연명하는 하청국가인가.
2. 남북문제까지 미국 무대에서 떠드는 순간,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된다
더 심각한 건 쿠팡 사태와 함께
남북문제까지 미국에서 꺼내든 장면이다.
이건 실수라기보다 사고방식의 문제다.
남북문제는 한국의 생존 문제다.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청와대가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총리는 미국에서
“트럼프만이 가능하다”는 식의 문장을 던지고,
특사 파견 같은 의제를 이야기한다.
이 말은 얼핏 “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현실주의에도 선이 있다.
남북문제의 중심은 한국이어야 한다.
한국의 안보를 한국이 논의하고,
한국의 미래를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틀을 놓치는 순간
한국은 다시 “허락을 기다리는 나라”가 된다.
당사자는 내려가고, 중재자만 남는다.
주도권은 사라지고, 변명만 남는다.
청와대는 착각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말을 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주권국가의 태도가 관계를 만든다.
3.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 왜 한국 소비자는 이렇게 조용한가
국가가 흔들릴 때 국민이 받쳐야 한다.
정부가 원칙을 잃을 때 시민이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조용한 존재는
정작 피해자인 한국 소비자다.
쿠팡은 한국 소비자의 지갑에서 성장했다.
쿠팡의 플랫폼 권력은 한국 고객의 구매 습관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쿠팡이 한국을 협박해도 쿠팡은 여전히 잘 팔린다.
탈퇴는 소수의 분노로만 남는다.
불매는 구호로 커지지 못한다.
이 침묵은 단순히 무관심이 아니다.
방조에 가까운 침묵이다.
기업은 시장의 언어만 알아듣는다.
정말로 기업을 멈추게 하는 것은
국회의 성명도, 정부의 해명도 아니다.
소비자의 행동이다.
우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 때
분노를 행동으로 바꾼 경험이 있다.
불매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소비자 권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쿠팡 앞에서는 침묵하는가.
쿠팡이 편하기 때문이다.
빠르기 때문이다.
싸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쌓이면 무엇이 되는가.
기업은 더 오만해지고,
정부는 더 흔들리고,
국민은 더 무력해진다.
쿠팡이 한국 정부를 협박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 권력이 아니라
한국 소비자의 침묵이 바닥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굴종의 구조’가 문제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쿠팡이라는 기업의 일탈로 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쿠팡을 욕하고 끝나면
다음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할 것이다.
쿠팡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
로비도 하고, 프레임도 짜고, 협박도 한다.
그건 기업이 아니라 탐욕의 논리다.
그러나 국가는 달라야 한다.
국가는 법과 원칙으로 서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거꾸로 간다.
기업이 협박하면 미국으로 달려가고,
정치적 부담이 생기면 “관리”라는 말로 포장한다.
주권 문제를 ‘오해’로 축소하고,
국가의 품격을 ‘관계’라는 말로 낮춘다.
그리고 국민은 조용하다.
편리함을 이유로 침묵하고,
피해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결국 기업의 오만을 키운다.
여기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쿠팡이 한국을 협박한 것이 비극이 아니다.
그 협박 앞에서 국가가 흔들린 것이 비극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보고도 침묵한 국민이 더 큰 비극이다.
주권은 정부가 지키는 것이지만,
그 정부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다.
정부가 흔들릴 때 국민이 등을 돌리면
국가는 기업의 먹잇감이 된다.
쿠팡은 단지 시험지였을 뿐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은 쿠팡의 본성이 아니라
청와대의 사대주의와 국민의 무기력이었다.
기업은 변명하지 않는다.
기업은 요구하고, 강요하고, 가격을 매긴다.
그게 기업의 생리다.
그러니 더 묻는다.
쿠팡이 한국을 협박할 때,
청와대는 왜 미국으로 달려갔나.
그리고 우리는 왜 조용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