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전쟁의 시대, 문명 뒤에 숨는 인간
지금 세계는 다시 전쟁의 언어로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폐허, 러시아의 위협,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충돌과 긴장.
뉴스는 매일 충돌, 보복, 안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사람들은 그 비극에 점점 익숙해진다.
전쟁은 멀리 있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쟁은 언제나 우리의 언어와 태도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전쟁은 소수의 결단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수의 침묵이 그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다.
우리는 전쟁을 보며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대개 화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분노는 감정으로 소비되고, 윤리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유예된다.
그리고 그 유예가 반복될 때, 전쟁은 비극이 아니라 일상적인 배경음이 된다.
인간은 잔혹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잔혹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전쟁을 직접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속으로 후퇴한다.
명령, 절차, 국익, 동맹, 안보.
이런 단어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치이기 이전에, 책임을 분산시키는 기술이다.
개인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는 순간, 인간은 놀라울 만큼 빨리 도덕적 중립을 선택한다.
문명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않았다. 문명은 인간을 더 안전하게 비겁하게 만들었다.
맨손의 폭력은 악으로 낙인찍히지만, 서류 속 폭력은 정책이 된다.
개인의 잔인함은 범죄가 되지만, 국가의 잔인함은 전략이 된다.
여기서 문명은 폭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가독성 좋은 언어로 번역한다.
그 번역이 완성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죄책감 없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위험한 인간은 증오하는 인간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인간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믿는 인간이다.
그 믿음은 무력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인간은 자기 힘이 약하다고 말하면서도, 침묵이 만들어내는 결과만큼은 정확히 누린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의 다른 이름이 되기 쉽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평화 담론이 아니다.
추상적인 인류애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책임의 언어다.
누가 시작했는지뿐 아니라, 누가 지속시키는지 묻는 언어.
누가 폭탄을 떨어뜨렸는지뿐 아니라, 누가 그것을 불가피하다고 말해주었는지 묻는 언어.
전쟁은 전장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전쟁은 매일의 뉴스 소비, 정치적 무관심, 현실론이라는 말, 그리고 나와 상관없다는 태도 속에서 유지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가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문명 뒤로 숨는가.
그리고 그 침묵이 만들어내는 죽음을, 언제까지 현실이라 부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