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제국이 강도로 돌변할 때

복종도, 대결도 아닌 ‘탈미’라는 선택

by 나팔수

[논단] 제국이 강도로 돌변할 때, 세계는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 복종도, 대결도 아닌 ‘탈미’라는 선택


요즘 국제 뉴스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시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관세는 협상의 수단이 아니라 벌금이 되었고, 제재는 규칙이 아니라 협박이 되었다.

동맹은 약속이 아니라 청구서로 바뀌었다.

미국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관세를 올리고, 금융을 죄고, 사법 관할을 들이민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를 미국 법정에 세우는 일조차, 주권 침해라는 자각 없이 진행된다.


그린란드가 탐난다고 말하고, 돈을 줄 테니 팔라고 하고, 안 되면 “전략적 필요”라는 말을 덧붙인다.

국가와 영토를 부동산처럼 다루는 언어가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이 장면들은 우발적 일탈이 아니다.

하나의 일관된 태도다.

힘이 있으니 가능하다는 세계관.


그래서 독일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세계가 도적 소굴로 변했다”고 말했다.

도적 소굴이란 무엇인가.

규칙을 어긴 자가 처벌받지 않고, 힘센 자가 훔친 것을 정당화하는 공간이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를 ‘신식민주의'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민주의는 더 이상 군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관세, 금융, 사법 관할, 안보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선택지를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제 분명해졌다.

질문은 더 이상 “미국이 왜 이러는가”가 아니다.

이런 미국에 대해 세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이다.

세계는 지금 세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첫 번째 길은 가장 넓고, 가장 조용하다.

미국의 질서 안에 그대로 남는 것이다.

관세를 맞아도, 제재를 당해도, 외교적 굴욕을 겪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숙이는 선택이다.

이 길을 택한 나라들은 현실을 말한다.

힘의 격차, 안보 의존, 시장 접근.

그러나 이 현실은 곧 습관적인 복종으로 굳어진다.


주권은 원칙이 아니라 허용된 범위가 되고, 오늘의 침묵은 내일의 요구를 부른다.

이 길의 끝에는 안전이 아니라 발언권의 소멸이 있다.


두 번째 길은 거칠고 요란하다.

“미국이 깡패라면, 우리도 힘으로 맞서자”는 선택이다.

핵무기, 군사 블록, 진영 대결.

이 길에는 이미 주체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미국 중심 질서를 깨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일부 국가는 여기에 연대하거나 기대를 건다.


그러나 이 선택은 또 다른 함정을 안고 있다.

이 진영은 기존 질서를 비판하지만,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힘으로 맞서는 방식은 결국 힘의 논리를 복제한다.

제국에 맞선 반제국이

다시 제국의 언어를 쓰는 순간,

세계는 다른 색깔의 정글로 옮겨갈 뿐이다.


인도처럼 어느 편에도 완전히 서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균형 외교, 전략적 모호성.

영리한 생존 전략이지만,

질서를 만드는 힘으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균형은 생존일 수는 있어도 대안 질서는 아니다.

그리고 세계의 다수는 이 논쟁의 바깥에 있다.

가난한 나라들, 주변부 국가들.

그들에게 미국은 압박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이고,

중·러의 대항 질서도 당장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이 세계 다수는 지금 질서 논쟁에서 배제된 채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남는 길이 있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어렵고,

그러나 가장 문명적인 길이다.

미국을 적으로 만들지 않되,

미국에 매달리지도 않는 선택.

반미가 아니라 탈미(脫美).

감정의 결별이 아니라 구조의 독립이다.

이 길은 군사 블록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규칙을 다시 쌓는다.

국력의 크기가 아니라 성향과 의지를 기준으로 연대한다.

제국이 되려 하지 않고,

규칙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여기는 국가들—유럽의 민주 국가들, 캐나다와 호주 같은 규칙 의존형 국가들,

개방과 법 위에 생존이 걸린 한국 같은 나라들이다.


이 질서는 느리다.

화려한 선언도, 즉각적인 승리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오래간다.

군사력이 아니라 법과 기준, 신뢰와 반복된 선택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세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고개를 숙이는 길,

주먹을 쥐는 길,

그리고 고개를 들고 규칙을 다시 쓰는 길.

이번에는 제국이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이번에는 세계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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