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무비자 입국, 환대인가 방임인가
문을 여는 일은 언제나 쉬워 보인다.
그러나 그 문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한국의 무비자 입국 정책과 제주 밀입국 사건은, 우리가 열어놓은 문이 얼마나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때 ‘열린 문’은 환대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불안의 통로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환대’인가, 아니면 책임을 잃은 ‘방임’인가.
열린 문이 만든 불안
무비자 입국 제도는 처음엔 관광객 유치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었다. “열린 도시, 세계와 함께”라는 구호는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동안, 그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제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입국은 쉬웠지만, 체류와 출국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겨졌다. 그 결과, 무비자 입국을 통해 들어온 이들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로 전환되었고, 일부는 범죄조직이나 밀입국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정책은 ‘열림’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무방비’를 택했다. 결국 환대의 문은 서서히 ‘불안의 문턱’으로 변해갔다.
제주 해안을 뚫은 고무보트
지난 9월, 중국인 여섯 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440킬로미터의 바다를 건넜다.
그들은 17시간 동안 해군, 해경, 해안경비대의 감시망에 단 한 번도 포착되지 않았다. 보트는 금속이 아니어서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고, 열영상 감시장비(TOD)는 탐지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체계였다.
해군, 해경, 경찰, 국정원이 각기 다른 법령과 작전 체계로 움직이면서, 정작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조차 불분명했다.
감시망은 있었지만 감시자는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 모두가 과거 불법 체류로 추방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한 번 추방된 이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밀입국이 아니라, 제도의 구멍이 만든 ‘재입국 사건’이었다.
열린 사회의 역설
한국 사회는 ‘개방’과 ‘환대’의 이미지를 자랑해 왔다. 그러나 개방은 언제나 관리와 책임을 전제로 한다. 지금의 무비자 정책은 그 전제가 사라진 채 유지되고 있다. ‘세계로 열린 문’은 그대로 두면서도,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는 추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 체류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열린 사회의 진정한 시험대는 문을 얼마나 활짝 열었느냐가 아니라, 그 문을 얼마나 책임 있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방은 용기지만, 관리 없는 개방은 방임이다.
방임의 구조를 넘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이 아니라, 체계의 재설계다. 무비자 제도는 유지하되, 사전입국허가제(ETA)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불법 체류 재발 국가에는 심사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제주 해안은 물론 태안 앞바다와 같이 밀입국자들이 선호하는 해안을 ‘특별경계구역’으로 지정하여 해군·해경·경찰의 통합 지휘체계를 구축하고, AI 기반 위성·드론·열감지 시스템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관 간 칸막이를 없애고 ‘해양안보청’(가칭)과 같은 일원화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의 목표는 단속이 아니라 예방과 책임의 제도화여야 한다. 진정한 환대는 제도의 부재에서가 아니라, 질서 속에서 존중을 얻는다.
환대는 문을 여는 일이 아니라, 책임지는 일이다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개방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를 강화할 것인가. 그러나 이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진정한 개방은 철저한 관리와 함께할 때 비로소 안전하다. 환대는 자유의 표현이지만, 방임은 무책임의 결과다. 무비자 제도와 밀입국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명확하다. 문을 여는 것은 환대이지만, 그 문을 지키는 것은 책임이다.
한국과 한국인들은 생각 없이 허튼짓을 하는 바람에 늘 후손들에게 부담을 안겼다. 이번만큼은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문을 여는 용기만큼, 그 문을 지키고 관리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