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가정교사 제6교시

대통령의 언어는 왜 국가의 기준이 되는가

by 나팔수

청와대 가정교사 제6교시


제6교시

대통령의 언어는 왜 국가의 기준이 되는가

— 말 한마디가 사회의 허용선을 바꿀 때

— 침묵, 회피, 농담의 정치적 비용

— 분열과 혐오를 방치하는 언어


대통령의 말은 흔히 ‘발언’으로 취급된다.

하나의 의견, 하나의 정치적 입장, 혹은 개인의 생각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국가에서 반복되는 가장 위험한 오해다.

대통령의 언어는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사용하는 공식 언어의 방향이며,

사회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무엇을 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암묵적으로 정하는 기준의 언어다.


대통령은 말할 자유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이미 말 그 자체가 제도적 효력을 갖는 위치에 서 있다.

그의 말은 법이 되지는 않지만,

법 이전의 공기를 바꾼다.

말 한마디가 사회의 허용선을 바꿀 때

대통령이 어떤 표현을 쓰는 순간,

사회는 즉각 반응한다.


지지자들은 그 언어를 확대하고,

반대자들은 방어하거나 반격하며,

다수의 침묵하는 시민들은 그 표현을

“이제는 이 정도까지 말해도 되는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무슨 의도로 말했는가가 아니다.

그 말 이후 사회가 무엇을 허용하게 되었는가다.


권력자의 언어는 항상 아래로 흐른다.

조심스러운 표현은 사회를 조심스럽게 만들고,

거친 언어는 사회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혐오를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혐오가 자라날 토양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언어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기준으로 관리되어야 할 공적 자산이다.


국가의 방향을 바꾼 대통령의 언어들

역사는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의 언어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국가의 이정표가 되었던 순간들을 보여준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은

내전 한복판에서 단 두 분 남짓한 연설을 했다.

이른바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그 연설에서 링컨은

북부의 승리도, 남부의 패배도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자유 속에서 태어났으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이 한 문장은

남북전쟁을 ‘영토 분쟁’에서

자유와 평등의 시험으로 재정의했다.

그 순간부터 미국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나라’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야 할 나라가 되었다.


링컨의 말은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전쟁의 의미와 전후 국가의 방향을 결정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존 F.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법이 아니었고, 정책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사회는

권리를 요구하는 언어에서

책임을 강조하는 언어로 한동안 이동했다.

청년층의 공적 봉사, 냉전기 시민 윤리,

국가와 개인의 관계 설정에 이 문장은 오래 남았다.


이 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언어는

현실을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침묵, 회피, 농담의 정치적 비용

더 위험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이다.


권력자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된 방관이다.

명백한 왜곡 앞에서 침묵할 때,

차별적 발언 앞에서 “논쟁 중”이라며 물러설 때,

불편한 질문을 농담으로 흘려보낼 때,

대통령은 갈등을 줄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목소리가 큰 쪽,

이미 힘을 가진 쪽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농담은 정치 언어에서 가장 위험한 장치다.

농담은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메시지는 남긴다.

“그럴 뜻은 아니었다”는 말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사회는 이미 그 말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분열과 혐오를 방치하는 언어

대통령의 언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상이다.


현실에서 대통령의 언어가 해야 할 최소 기준은 이것이다.

갈등이 폭력과 혐오로 번지지 않도록 경계를 제시하는 것.

대통령이 말로 선을 긋지 않으면,

사회는 가장 거친 언어가 그 선을 대신 긋게 된다.


대통령의 언어는 이미 제도다


대통령의 언어는

법이 되기 전에 사회를 움직이고,

정책이 나오기 전에 시민을 교육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대통령이 틀린 말을 할 때가 아니라,

그 말이 기준이 되는 순간을

아무도 통제하지 않을 때다.


대통령의 언어는

국가의 품격을 설명하는 수사가 아니라,

사회의 허용선을 실제로 그리는 도구다.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 이후

무엇이 당연해졌는가다.

대통령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그 말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교시의 질문은 단순하다.


대통령은 지금

의견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국가의 기준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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