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의 품격이 국가의 품격이다
[가정교사 노트 2]
팔로워의 품격이 국가의 품격이다
우리는 리더십을 말할 때 늘 리더만 본다.
대통령의 결단, 대통령의 철학, 대통령의 말투, 대통령의 인간됨.
국가의 성패를 한 사람의 능력에 걸어버리는 습관은 놀라울 만큼 흔하다. 그래서 국정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대통령이 왜 저러는가.”
“대통령이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대통령이 무능하다.”
물론 지도자의 책임은 크다.
대통령의 판단이 국가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가정교사로서,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국 우리 자신을 놓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리더 한 사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국정은 청와대의 몇몇 사람들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운명은 언제나 ‘리더의 품격’과 ‘팔로워의 품격’이 함께 만들어낸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단어가 있다.
팔로워(follower).
그리고 더 자주 잊는 개념이 있다.
팔로우십(followership).
팔로워란 단순히 아랫사람이 아니다.
부하도 아니고, 추종자도 아니며, 손뼉 치는 사람도 아니다.
팔로워는 리더를 떠받드는 존재가 아니라, 리더를 현실에 묶어두는 존재다.
리더가 흔들릴 때 곁을 지키는 사람이면서도,
리더가 잘못 가는 순간에는 그 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실은 자주 반대로 흘러간다.
권력의 주변에서는 팔로워가 ‘품격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바뀌기 쉽다.
리더에게 필요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분을 맞추는 사람”으로 정렬되기 쉽다.
그 순간부터 권력은 고립된다.
고립은 리더가 혼자서 만든 감옥이 아니다.
팔로워들이 ‘침묵’이라는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 만든 감옥이다.
대통령이 고립되는 과정은 대개 아주 조용하다.
누군가는 충언을 하려다 멈춘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읽고 말을 삼킨다.
누군가는 “괜히 나섰다가 찍히면 끝”이라는 계산을 한다.
누군가는 처음에는 완곡하게 반대해 보지만, 몇 번 무시당한 뒤 포기한다.
그렇게 현실은 조금씩 대통령의 귀에서 멀어진다.
이때 대통령의 방 안은 더 밝아진다.
보고는 더 잘 정리되고, 문장은 더 매끄러워지고,
회의는 더 효율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것은 국정이 좋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국정이 ‘실패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되는 과정일 수 있다.
팔로워의 품격은 여기서 결정된다.
그 품격이란 학력이나 스펙이 아니다.
권력의 근처에서 오래 버틴 경력도 아니다.
팔로워의 품격은 결국 딱 한 가지로 드러난다.
필요한 말을 필요한 순간에 할 수 있는가.
좋은 팔로워는 리더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팔로워는 리더를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리더를 지켜내는 사람이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리더의 권위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다.
리더가 국민에게서 멀어지지 않게 지킨다는 뜻이다.
리더가 현실을 잊지 않도록 지킨다는 뜻이다.
팔로워는 리더의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팔로워는 국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팔로워는 대통령의 편이 아니라, 국민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도 살고, 국가도 산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남긴다.
팔로워의 품격이 국가의 품격이다.
리더가 존엄한 나라가 아니라,
리더의 곁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비판이 살아 있는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침묵이 습관이 된 나라가 무너진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완벽히 알 수는 없다.
그게 인간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려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잊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팔로워다.
국가의 운명은 결국 그 팔로워들의 품격에 달려 있다.
누가 리더의 옆에 서 있는가,
그 곁에서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침묵을 견디는가,
어떤 진실을 감당하는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리더십 못지않게 팔로우십을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