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집값이 나라를 인질로 잡을 때

일본의 그림자가 한국 위에 드리울 때

by 나팔수

[논단] 집값이 나라를 인질로 잡을 때

― 일본의 그림자가 한국 위에 드리울 때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아파트 한 평에 3억 원씩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 발언은 집값에 대한 감정적 불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이미 정상적인 자산 궤도를 벗어났다는 정치적 경고다.


문제는 비싼 집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가격이 평균값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회든 초고가(高價) 주거 공간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평균적인 주거 자산의 가격이 소득, 생산성, 노동 가치와 완전히 분리될 때 그 사회는 내부 붕괴를 피할 수 없다. 부동산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금융 상품이자 신분 증명 수단이 되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를 인질로 만든다.


이 경로의 종착역을 가장 먼저 보여준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부동산 붕괴는 하루아침의 폭락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자산 과열, 가격 불패 신화, 그리고 “언젠가는 더 오른다”는 집단적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거품이 꺼진 뒤 일본은 단지 집값만 잃은 것이 아니라, 성장 동력과 사회적 활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함께 잃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치와 사회가 결단을 미룬 대가였다.


중국의 헝다 사태, 홍콩의 주거 압박, 캐나다와 유럽 주요 도시의 급등, 그리고 미국—특히 뉴욕의 천문학적 주거 비용 역시 같은 병리의 변주다. 부동산이 주거재가 아니라 금융 자산으로 기능할 때, 그 사회는 공통적으로 계층 고착과 세대 단절을 경험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보다 더 위험한 조건 위에 서 있다.


첫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비정상화가 한국에서는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둘째, 가계부채 의존도가 치명적으로 높다. 집값 조정은 곧바로 개인 파산과 금융 불안으로 전이될 수 있다.


셋째, 수도권 단일극 구조다. 서울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 지대가 거의 없다. 이 조건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는다면, 한국은 더 짧은 시간에 더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쉽게 손대기 어렵다. 대통령이 언급한 “저항 강도”의 정체는 분명하다. 다주택자만이 아니다. 이미 집을 소유한 중산층, 집값 상승에 노후와 미래를 맡겨버린 계층 전체가 이해당사자가 되었다. 부동산은 일부의 탐욕을 넘어 국민 다수의 삶을 인질로 삼은 구조가 되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개혁을 말하면서도 실행 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듯, 결단을 미루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원론이 아니라, 선택의 명확화다.


첫째, ‘집값은 내려갈 수 있다’는 정치적 선언을 공론의 중심에 올려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집값이 오를 때는 시장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내려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이 침묵이 바로 투기의 연료였다. 가격 불패 신화가 유지되는 한, 어떤 규제도 우회된다. 중요한 것은 집값 하락 자체가 아니라, 하락을 ‘금기’로 만드는 사회적 합의다. 국가는 명확히 말해야 한다. 가격은 조정될 수 있으며, 대신 그 과정에서 생존은 보호하되 불로소득은 보호하지 않겠다고. 이 선언 없이는 어떤 정책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둘째, 부동산 보유에 대한 ‘점유 비용’을 실질적인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논쟁은 보유세냐 거래세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집을 많이, 오래, 비워둔 채 점유할수록 사회에 부담을 주는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도로, 학교, 치안, 인프라 위에 올라선 자산이라면 그 비용을 공동체에 돌려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이다. 투기를 처벌하자는 도덕론이 아니라, 점유에 책임을 묻는 제도화다. 이 기준이 분명해질 때 시장은 비로소 ‘사는 집’과 ‘쌓아두는 집’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셋째, 자산 축적의 경로를 부동산에서 의도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한국에서 집은 주거이자 연금이며 보험이고, 마지막 안전망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규제도 임시방편에 그친다. 노동과 기술, 지역 기반 자산, 공적 연금이 부동산을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몰린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강제다. ‘집 말고도 미래가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집 말고는 답이 없게 만들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넷째, 수도권 집중 해소는 이전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중심’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을 옮기라는 정책은 실패했다. 사람은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화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해법은 단일 수도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삶의 중심을 만들어 경쟁시키는 것이다. 기업이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을 붙잡을 조건을 지방에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교통망이나 공공기관 이전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체를 설계하는 국가 전략의 영역이다.


다섯째, 가격 조정의 충격은 피하려 하지 말고 관리해야 한다.

조정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내려가느냐가 아니라, 내려가는 과정에서 누가 무너지는가다. 무차별적 폭락은 막아야 하지만, 조정 자체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은 시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강 국면에서 개인의 삶과 금융 시스템이 동시에 붕괴하지 않도록 완충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패하면, 부동산 문제는 곧바로 정치적·사회적 위기로 전환된다.


부동산 문제는 정책 조정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의 문제다. 일본은 그 결단을 미뤘고,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지금 한국이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집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미래를 포기한 사회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2026.2.11. 古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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