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재명 정권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는가

압박 앞에서 스스로 협상력을 내려놓는 나라

by 나팔수

[논단] 이재명 정권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는가

— 압박 앞에서 스스로 협상력을 내려놓는 나라


정권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는가.


최근 보도된 기사 하나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는 각국의 태도를 비교한 기사였다. 유럽연합은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기 위해 ‘통상위협대응조치(ACI)’ 같은 제도를 거론하며 협상력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압박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먼저 양보할 채비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국 외교와 통상 정책이 반복해 온 익숙한 패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요구하면 우리는 먼저 고민하고, 압박이 시작되면 우리는 먼저 양보를 검토한다. 그 결과 협상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대는 요구를 높이고 우리는 대응 수단을 잃는다.


외교와 통상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호(signal)다. 상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느냐가 협상의 성격을 결정한다. 만약 한 나라가 압박에 쉽게 양보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그다음 협상은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는 더 큰 요구를 하게 되고, 압박은 더 거칠어지며, 협상력은 계속 약화된다.


그래서 유럽은 대응책을 준비한다. 유럽연합이 거론하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대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장치다. 협상에서 힘은 반드시 실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상대에게 대응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만으로도 협상은 균형을 찾는다.


반면 한국의 태도는 그 반대다. 대응 수단을 만들기보다 먼저 양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압박이 시작되기도 전에 협상력을 스스로 줄이는 방식이다. 외교에서 이것만큼 위험한 신호는 없다. 그것은 곧 “압박하면 통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한국의 외교와 통상 정책은 오랫동안 충돌을 피하는 전략에 익숙해져 왔다.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협상력을 강화하는 일은 뒤로 밀렸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이미 바뀌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협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힘과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통상 정책은 점점 더 직접적인 압박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관세, 투자, 공급망, 기술 규제까지 모두 협상의 도구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력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협상력이다. 대응 능력을 보여주고, 선택지를 확보하고, 상대가 쉽게 압박할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다. 유럽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규모가 작은 나라들조차 협상력을 지키기 위해 제도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압박이 시작되면 대응책을 고민하기보다 먼저 양보할 준비를 한다. 협상력을 지키기보다 갈등을 피하려 한다. 그 결과는 언제나 같다. 협상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요구와 수용의 관계로 바뀐다.


국제 정치에는 공백이 없다. 우리가 협상력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는 상대의 요구로 채워진다.


그래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는가.


유럽은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만 먼저 양보할 채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스스로 협상력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대가는 결국 국가 전체가 치르게 된다.


외교는 선의로 움직이지 않는다. 힘과 신호로 움직인다.

지금 한국이 보내고 있는 신호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같은 장면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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