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등한 주권, 더 이상 굴욕은 없다
한국 사회가 미국의 비자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는 오래된 착각이 있다. 우리는 미국이 제도를 개선해 주기를 바라며, 때로는 미국이 “반성한다, 사과한다”는 말을 내놓으면 곧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미국의 비자 제도는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지, 우리가 고쳐달라고 요구할 권한도 이유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제도의 모양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집중되어야 한다.
합법적 비자를 가진 한국 기술자 수백 명이 미국 조지아에서 집단 단속을 당한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손목에 케이블타이를 묶인 채, 바퀴벌레가 들끓는 감금시설에 수십 명이 몰려 지냈으며, 임산부조차 모욕적인 처우를 피하지 못했다. 제공된 음식은 개밥만도 못했고, 숙련된 기술자는 돼지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제도 개선을 기다리며, 미국 관리나 주지사가 방한하면 여전히 ‘어서 오십시오’라며 환영의 제스처를 취한다. 이것은 이미 대등성을 잃은 태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비자 문제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사실 자체다. 비자 제도는 철저히 미국의 주권적 결정이며, 우리가 협상을 벌일 대상이 아니다. 만약 미국이 제도를 엄격히 바꾸어 우리가 갈 수 없게 된다면, 우리의 선택은 간단하다.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자를 확실히 보장해 달라, 우리 국민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식으로 구걸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 제도가 우리 국민에게 불합리하게 작용된다면 거부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장치를 우리가 직접 마련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착각은 사과에 대한 환상이다. 미국이 “사과한다, 반성한다”는 말을 내놓으면 곧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여긴다. 물론 미국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상대가 국민을 구금하고 모욕한 뒤 “미안하다” 한마디로 끝낼 수는 없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뒤에는 법적 책임의 추궁, 피해자 배상, 그리고 실질적인 보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재발방지나 제도개선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제도를 고쳐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불합리하면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국민과 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책무는 분명하다. 정부는 국민이 해외에서 불이익이나 모욕을 감수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미국이 제도를 개선해야 우리 국민이 갈 수 있다, 우리 기업이 투자할 수 있다”는 식의 구걸 외교에 머물러 있다. 국민 보호는 외국 제도의 개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결단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미국의 제도가 우리에게 불합리하다면 국민이 그 땅에 가지 않도록 하고, 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를 제한하는 것, 그것이 곧 국민을 지키는 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은 기업들의 태도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기술자와 직원을 파견하며, 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기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자 문제로 불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 기술자 한 명당 비자 수수료로 1억 4천만 원을 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이 부담을 기업이 감당할 이유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해야 할 주체가 바로 기업인데도, 미국의 제도와 압박 앞에 스스로 한 수 지고 들어가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더구나 유튜브 등에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어느 기업이 철수를 결정했다느니, 기술자가 없어서 미국의 공장이 멈췄다느니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로는 그런 조짐조차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기업들이 정작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사안 앞에서 대한민국 국회는 왜 이렇게도 조용한가. 도둑이 3,500억 불을 내놓으라며 강탈을 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10배 이상 올리겠다고 윽박지르고, 관세를 100% 부과하겠다고 협박하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도 이 문제에는 사실상 관심을 두지 않고, 전혀 다른 사안으로만 목소리를 낸다. 나라가 강도에게 강탈을 당하는데도 국회가 방관한다면, 그건 국회 자격이 없는 것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일각에서는 1000억 불 정도 선에서 협상을 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통화스와프를 해달라고 애걸하는데 이건 빚내서 도둑한테 갖다 바치는 꼴이다. 여전히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정당한 항의는 구호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법적·의료적 지원, 손해배상 청구, 미국 정부와 주 당국에 대한 공개적이고 서면화된 사과 요구, 국제사회 제소와 여론 환기를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 미국 고위 인사가 한국을 찾을 때도 무조건적인 환대가 아니라, 책임 있는 조치가 없다면 접견을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 협상팀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과 시민사회가 지지와 압력을 동시에 가해야 정부가 당당해지고, 협상장에서 힘을 얻는다. 국회가 침묵을 거두고 제 역할을 다할 때, 정부도 더 이상 굴욕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과는 끝이 아니다. 사과 뒤에 책임, 배상, 실질적 보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미국의 제도 개선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결단으로 국민을 보호하고 상호주의로 대응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어서 오십시오”라는 말로 모욕을 덮지 말자. 우리는 대등한 주권국가이며, 그에 걸맞은 목소리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