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부상과 패권의 공백

세계 문명의 전환기, 그리고 한국의 선택

by 나팔수

[논단] 극우의 부상과 패권의 공백 – 세계 문명의 전환기, 그리고 한국의 선택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극우의 부상은 단순한 지역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가 보여주는 막무가내식 정치, 협박과 깡패적 언행은 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극우 흐름의 한 단면이다. 본래 보수는 전통을 지키고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이라면, 극우는 그와 달리 도덕적 규율이나 보편적 가치를 내던지고, 배타적 민족주의와 조폭적 권력의지를 앞세운다. 지금 세계를 흔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극단적 우경화의 파고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주의가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흔들고 있고, 유럽에서는 난민 문제를 빌미로 극우 정당들이 제도권 정치의 중심으로 파고들고 있다. 브라질은 보우소나루주의의 그림자를 여전히 지니고 있고, 인도는 힌두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강화하며, 러시아는 권위주의적 극우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수자와 타자를 배제하고, ‘강한 지도자’를 숭배하며, 국제적 협력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20세기 파시즘의 부활을 연상케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약화되고, 인권과 다양성은 공격당하며, 국제 규범은 흔들린다. 문제는 미국이 여전히 세계 패권국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패권을 약화시키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자리를 대체할 확실한 세력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하고 있으나, 세계적 신뢰나 제도적 안정성을 제공할 힘은 갖추지 못했다. 이제 세계는 패권이 존재하지 않는 ‘공백기’를 맞이했다. 이는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국제 질서 자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에 매달리며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전쟁뿐 아니라 장기적 무질서와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것은 ‘G-Zero’, 즉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계다.


이 격변 속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미 국내에서도 극우·극단 세력의 결집이 노골화되고 있다. 윤석열 내란 사건을 계기로 극단적 집단이 법원의 결정을 거부하고 폭력적으로 판사를 위협했으며,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정치 폭력을 일상화하려는 시도의 전조였다. 더구나 일부 판사와 검사가 시민적 비판을 거부하고 오히려 스스로 절대 권력을 강화하는 행태는, 사법부가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라 견제받아야 할 권력 집단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위기는 외부의 극우 파고만이 아니라, 내부 기득권 구조가 결탁하여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데 있다.


이와 동시에, 가짜뉴스와 유튜브식 선동, 조회수를 위한 허위정보 남발은 극우 정치와 결합하며 새로운 동원 수단이 되고 있다. 특정 교회와 사이비 종교 세력까지 여기에 얽히면서, 극단주의의 토양은 더욱 넓어진다.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해외 극우 세력과의 교류, 모방, 느슨한 연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극우의 네트워크 속에 한국이 편입될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첫째, 폭력과 사법 방해에는 무관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둘째, 사법부 권력화와 독단을 견제할 개혁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셋째, 허위정보와 선동을 차단하는 디지털 질서와 미디어 리터러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극단주의의 사회적 토양이 되는 불평등과 절망을 줄이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다섯째, 국제적 극우 연대에 대응하는 민주적 중견국 연대를 통해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의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세계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 한국이 그저 주변부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문명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인지는 바로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극우의 부상과 패권의 공백이라는 이 전환기의 도전에, 한국은 저항과 창조의 이중 과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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