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화문은 이토록 조용한가

광장의 침묵, 굴종의 세습, 그리고 사라진 분노

by 나팔수

[논단] 왜 광화문은 이토록 조용한가

— 광장의 침묵, 굴종의 세습, 그리고 사라진 분노


광화문은 단순한 도로명이나 건축물이 아니다. 그곳은 한국 사회의 심장이며, 국민의 의지가 숨 쉬는 장소였다. 기쁨이 있을 때면 축제의 함성이 터졌고, 부정이 있을 때면 분노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환희, 광우병 파동의 촛불, 그리고 대통령 탄핵의 함성까지 — 광화문은 언제나 깨어 있는 시민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광장은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다.


1. 축제의 광장은 남았지만, 분노의 광장은 사라졌다


조만간 경주에서 APEC 회의가 열린다.

정부는 마치 우리가 국제사회의 중심국가라도 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그 무대의 이면에서는 굴욕적인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외교팀이 미국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협상의 도장을 찍게 해 달라며 애걸한다. 그런데도 광화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하다.

2002년의 광화문은 축제의 광장이었고,

2008년에는 저항의 광장이었으며, 2016년에는 정의의 광장이었다. 하지만 2025년의 광화문은 침묵의 광장이 되어버렸다.


2. 일본에는 분노하고, 미국에는 침묵하는 이유


2018년 여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등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품목의 수출을 규제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그때 온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맥주를 버리고, 자동차를 부수고, 일제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 그때 우리는 “한국이 달라졌다”라고 믿었다. 하지만 불과 몇 해 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그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본 총리 앞에서 웃으며 손을 맞잡고, 뉴라이트 세력이 등장해 식민지 역사를 미화하고, 친일의 언어가 다시 교과서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한때 일장기를 불태우던 시민들은 이제 일본 총리의 미소 앞에서 침묵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의 일본보다 훨씬 약탈적인 압박을 가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분노는커녕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다. 미국의 관세 협박, 기술 통제, 방위비 분담금 인상, 그리고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군사적 종속 관계까지도 우리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왜, 이토록 조용한가.


3. 굴종이 체질이 되었을 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깊이 미국의 그늘 아래 살아왔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시절부터 이어진 한미 군사협정, 방위조약, 전작권 위임 — 이 모든 제도는 조금씩 우리의 자존을 마비시켰다.

미국은 ‘보호자’, 우리는 ‘피보호자’. 그 관계가 70여 년 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 서는 법을 잊었다.

“미국에 맞선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굴종은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결국 운명이 되어버렸다.


4.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순간이다.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 자신이다. 트럼프의 일방적 압박, FTA의 일방적 파기, 관세 폭탄과 안보 동맹의 정치적 이용 — 이 모든 행위로 미국은 스스로 ‘동맹의 신뢰’를 깨뜨렸다.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을 파괴한 적도, 약속을 어긴 적도 없다. 오히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조지아, 텍사스, 오하이오 등 곳곳에 거대한 공장을 짓고 수만 명의 미국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미국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럼에도 돌아온 것은 ‘보답’이 아니라 ‘굴종’이었다. 이 모순된 현실 앞에서 국민은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외교팀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협상 자리에서 “3,500억 달러는 너무 많습니다, 조금만 깎아주십시오”라며 눈치를 본다. “통화스와프는 가능하겠습니까?” 하고 손을 내민다.

거절당할까 두려워, 마땅히 써야 할 협상카드는 꺼내지도 못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군이 철수하는 순간, 미국의 동북아 패권은 무너진다. 한국이 ‘대등한 동맹국’으로 서는 것은 미국의 손실이 아니라, 오히려 동맹의 지속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 단순한 사실조차 읽지 못한 채, 여전히 비실비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재벌총수들까지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섰다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난리법석이다. 이 사람들아 왜 돈 대고 기술까지 갖다 바치는 기업들을 욕보이는가. 이건 외교가 아니다. 굴종의 반복이다. 이대로 가면, 이번 관세 협상이 굴욕적으로 마무리되고, 트럼프는 곧바로 안보협상의 칼날을 꺼낼 것이다.

“주둔비를 더 내라.” “방위 조약을 다시 쓰자.” 그러나 이제 주둔비는 오히려 우리가 받아내야 하고, 이 참에 지금까지 무상으로 사용한 부지에 대한 임대료에 이자까지 붙여서 청구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미국의 영원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5. 다시 불을 켜야 할 시간


광화문은 단지 도로와 돌기둥의 이름이 아니다. 그곳은 국민의 목소리가 깃드는 장소다. 이제 그 목소리가 다시 필요하다.

분노는 미움이 아니라 자존의 표현이다.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체념의 징후다. 광화문이 다시 촛불로, 그리고 횃불로 타올라야 한다. 이번에도 우리가 침묵한다면, 다음 세대는 ‘주권’을 말할 자격조차 잃게 될 것이다.


지금의 광화문이 조용한 이유 — 그건 국민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눌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보호받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나라로 거듭나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두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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